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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과

건축학과에서는 뭘 배울까? - 애플이 따라한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 - 1

 

바우하우스 데사우

몇 년도에 지어진 건물 같은가?

동대문 거리

이 시절 한국의 동대문 거리 사진이다.

두 사진 모두 1925년 지금으로부터 99년 전 건물이다.

지금 한국에 지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이 이미 100년 전에 디자인되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오늘은 건축학과가 사랑하는 바우하우스와 바우하우스가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찾아보자.

 


 

발터 그로피우스

이름부터 멋진 아저씨다. 얼굴도 잘생겼다....

이 분이 바우하우스의 초기 학장이다.

 

장난스럽게 얘기하지만,

왼쪽부터 르 꼬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모더니즘 건축 4대 거장이라 불리는 분이시다.

 

심지어 이중에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도 있다는 사실...

 


 

 

바우하우스는 건축, 미술, 공예, 포스터 디자인 등 예술 전반을 가르친 학교인데,

바우하우스는 공예 장인인 마이스터를 키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독일 공작연맹의 이념을 계승해 디자인과 공예의 벽을 허물고, 더 나아가 산업혁명을 맞이한 시대에 맞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공예가 무엇인지도 보여주기 시작한다.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나는 바우하우스가 진짜 혁신을 했다고 생각한다.

 

감성 카페에 있을 것만 같은 바실리 체어 (1925)

 

회장님 의자 같은 바르셀로나 체어 (1929)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1929)

 

이 작품들이 바우하우스에서 만들어진 공예품이다.

 

두 번째 의자는 스페인의 만국 박람회에 독일관 건물을 지으며 만들어졌는데,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넣을 의자를 주문 제작하며 만들어져 양산되었다.

1929년에 만들어진 건물과, 의자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깔끔하다.

철과 유리에 미니멀리즘을 담은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누구인지 잘 보여주는 건물과 의자다.

 

LESS IS MORE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친 말이자, 그의 건축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글귀다.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훌륭한 학교에도 비극이 찾아온다.

1930년 독일의 극우정당 나치가 집권하며 힘을 잃기 시작한다.

혁신을 추구하는 그리고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바우하우스는 나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반하는 것이라

나치의 탄압으로 데사우의 학교가 끝이 나고, 베를린으로 옮겨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이끌어가지만, 나치의 권력이 너무 커지자 바우하우스는 1933년 폐교하게 된다.

 

이때 초대 학장인, 발터 그로피우스는 1937년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건축학 교수로, 마지막 교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38년 일리노이 공과대학의 건축학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에 그리고 전 세계에 바우하우스 정신에 대해 가르치게 된다.

 


 

 

이렇게 바우하우스는 건축만 가르친 학교가 아니라, 디자인 전반을 연구하고 시도하며 가르친 학교다.

다음번에는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회사, 산업디자이너를 알아보려 한다.

 

짧지만, 오랜만에 학부 때의 수업을 함께 찾아본 것 같아 기분이 새롭다.

이번에는 너무 늦지 않게 금방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