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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과

건축학과에서는 뭘 배울까? - 애플이 따라한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 - 2

 
 
 
 
 

애플 주가

애플의 주가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고 있다.
저번 시간에는 바우하우스의 역사에 대해 같이 찾아봤다.
이번에는 바우하우스의 가르침과 바우하우스에 영감을 받아 태어난 위대한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세계 시총 1위의 애플은 어떤 디자인으로 세계 1등이 되었는가?
어떻게 다들 맥북을 들고 스타벅스에 찾아오게 만들었는가 알아보는 시간이다 ㅎㅎ
 


 
얼마 전 바우하우스 100주년 역사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바우하우스와 100주년 역사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회사가 하나 있다. 여기도 100년된 회사다 하하
 

브라운

우리에게는 그나마 면도기로 잘 알려진 회사 브라운이다.
 

Max Braun

 
맥스 브라운은 1921년 바우하우스 설립 2년 후 전쟁과 국제금융위기를 겪은 독일에서 브라운이라는 회사로 창업했다. 
 

Braun Cosmophon 333W (1932)

브라운은 제품들을 수리해 주는 일을 하다가 다른 회사의 부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라디오를 만들게 된다.
이 제품은 브라운이라는 회사의 역사 그 자체가 되는 제품으로 나중에 로고 리디자인 때 BRAUN의 중간자인 A를 이 라디오 모양을 본따 아치형으로 만들어 이 라디오를 떠올리게 한다.
 
 
 
다음으로는 지금의 브라운이라는 회사를 있게 해 준 브라운 면도기다.
1950년 6.25 전쟁 시대에 이미 만들어졌다니 놀랍다.

최초의 포일형 면도기 (1950)

 
 


 

브라운 형제

 
1951년 갑작스럽게 맥스 브라운이 죽고 브라운 형제가 경영을 하면서 회사 브라운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광고부서와 디자인부서 등을 신설하고 로고를 바꾸며, 바우하우스의 뒤를 이어 예술 학교를 짓기도 한다.
 

브라운 로고 리디자인 (1952)

 

울름 조형대학의 포스터

 
 


 

그리고 브라운 형제들이 해낸
최고의 인재 영입이 있었다.
디터 람스


지금은 독일출신 세계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라 불리는 디터람스가 브라운에 들어오게 된다.
건축과를 나온 그는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전담으로 브라운 사무실을 리디자인하며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브라운에서 회사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제품 디자인일도 맡게 되는데, 요즘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처음으로 그가 맡은 작품은 SK4이다.
잠시 보고오자.

SK4 (1956)

 
1956년 제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턴 테이블을 시작으로 엄청난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T3 porket radio (1958)
 

당시 라디오의 패러다임을 바꾼 주머니 사이즈의 제품이다. 이 미니 라디오는 디자인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엄지 손가락 하나로 작동되는 이 제품의 파급력이 어떨지는 디터 람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제품을 보면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즘이 미니멀리즘이 끝나지 않고 전해져 왔다는 느낌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언제 만들어진 제품인지 가늠하기 힘든 T3를 만든 디터 람스의 작품을 몇 개 더 보겠다.
 

L1 (1959)
KF 20 (1972)
MPZ 22 (1972)
ET 33 (1977)

 
이후 1970년대 후반, 디터 람스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브라운의 디자인 철학을 통합하고 요약하기 시작한다.
그는 바우하우스, 울름 조형대학,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정보를 모아 단순하고, 유용하며, 오래가는 제품을 디자인하기 위한 10가지의 큰 원칙을 만들어낸다.
 

 
 
이때 만들어진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은 현대 디자인의 필수 요소가 되었으며,
그의 디자인 철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다음은 미니멀리즘의 대명사 가된 디자이너,
디터 람스를 가장 존경한다는
Apple의 전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포춘

가장 위대한 현대 디자인을 뽑는 포춘 디자인 100선을 들어본 적이 있나.
이중 당당히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이폰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다.
조너선 아이브


그는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떠나 있던 1992년 입사해 디자인을 중요시하지 않던 CEO밑에서 혼란을 겪으며 퇴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1997년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로 돌아오고 전폭적인 지지를 하며 퇴사가 아닌 애플을 시총 1위 기업으로 만든 디자이너가 된다.
애플은 엔지니어의 설계 후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는 순서를 뒤집어,
디자이너가 먼저 디자인한 후 엔지니어가 설계하는 디자인 중심 문화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1998년 iMac G3로 그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iMac G3
"미니멀리즘"의 대명사라 불리는 그지만, 미니멀리즘 디자인과는 정 반대로 한 자리에 고정하고 사용하는 데스크탑에는 전혀 필요 없는 손잡이를 만든 경우도 있는데, 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딱딱하고 멀게 느껴지는 퍼스널 컴퓨터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iPod

이후로는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작품과 닮은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디터 람스가 만든 엄지손가락 하나로 조절하던 포켓 라디오는 아이팟에 영감을 주었고,
 

iMac

디터 람스의 스피커는 네일아트 사장님들도 좋아하는 일체형 PC iMac이 되었다.
 

iPhone

최고의 제품은 역시 iPhone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학창 시절  iPhone 3GS와 갤럭시 S의 극명했던 갭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이브는 2017년 제임스 다이슨의 후임으로 영국 왕립예술대학의 총장으로 지명되었으며,
애플에서 iPhone5s 이후는 아이브가 주도해서 만든 제품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제품 디자인에는 큰 흥미를 잃은 것인지 Apple Park 시공에 집중한 후,
19년 퇴사하고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서없지만, 발터 그로피우스가 독일에서 시작한 바우하우스 정신이 브라운의 디터 람스를 거쳐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까지 전해져 온 것을 찾아보았다.
다 보고나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다음은 우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꿈만 커서 이런 상상하는 낙으로 사는 필자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다음에는 애플은 어떻게 디자이너들에게 사랑받는 회사가 되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볼까 했는데
글감이 잘 있을지 모르겠다 ㅎㅎ
다음에도 조금 덜 재미없는 글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