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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8 "서울이 고향"이라는 이상하고 따뜻한 말 by 휘발성고양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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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희_2002년 2월_캔버스에 혼합재료_117×91cm_2007_이미지 속닥속닥)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풍경은 생활하수가 흐르도록 골목가장자리에 만들어놓은 홈에 빠져 죽어있는 호랑나비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시절의 어린 나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그 나비를 넋이 빠져서 들여다보았던 듯하다. "서울이 고향"이라는 말이 모순으로 들릴 정도로 기이한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 유년시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온통 시멘트 색깔.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보낸 시절은 호랑나비의 날개처럼 아름다웠다. 더러운 생활하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내 기억들은 어찌나 애틋하고 다정한지, 세상을 배워나가는 서툰 방법들도 그 안에서는 부끄러울 것 없다. 그것이 바로 고향의 힘이리라.

"쥐를 왜 잡아?"라는 내 질문에 "구워먹으려고. 이따가 구워줄께."라고 짓궂게 대답하는 동네오빠들을 믿고 하루종일 서성거렸던 골목은 승동교회 바로 앞에 있었다. 그 골목의 마지막 집은 가운데 마당이 있는 네모난 한옥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에는 저마다의 가족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주인집에서 일하던 어린 식모는 우리 꼬맹이들을 데리고 적선시장에 나가 "아줌마 오뎅 한 장만 주세요" 떼써서 받은 오뎅을 찢어서 먹여주곤 했다. 우리집의 식모언니와 다른 집의 식모언니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모여 장떡을 구웠고, 나는 그 집에서 숟가락으로 감자 깎는 법과 손톱을 세우지 않고 마늘 까는 법을 배우며 자라났다.

몰려다니며 놀았던 그 많은 집, 아니 방들 중에서 TV가 있는 것은 우리 뿐이었다.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 달려있고 길다란 네 개의 다리가 받쳐주고 있던 그 흑백의 TV를 우리는 거만하게 자랑했다. 아이들이 TV를 보고싶어 봉당마루에 오글오글 모여들면 우리는 책으로 브라운관을 얼른 가리곤 했다. 쇼쇼쇼에서 본 개다리춤을 얼추 흉내내면 모두의 얼굴에 감탄이 어리던 시절. 말을 배우기도 전에 "영감, 왜불러~"로 시작하는 노래를 먼저 불러제끼기 시작한 건 보물 제1호였던 TV의 덕분이었으리라.

그때에는 왜 그렇게 모든 것이 중요했을까. 빨래를 빨리 마르게 하는 건 햇볕이다, 아니 바람이다며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고, 승동교회를 수리하는 데서 얻어온 파란 타일조각들을 늘어놓았다가 다시 차곡차곡 상자에 담아놓고, 옆집 아주머니가 준 간장종지 안의 구슬들을 하루종일 꿰었다가 다시 풀기도 했더랬지. 엄마가 가르쳐준 광화문 담벼락의 "담쟁이"가 이름이 "담나무"인지 "벽쟁이"인지 기억나지 않아 더듬거리며 나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깨쳐갔다. 그 집에서 나는 "너무 다리가 많아서 뒤집어져서도 걸을 수 있는 벌레"인 송충이를 처음 보았고, 봉당마루에 누운 채 울지 않고 머리감는 법도 배웠다. 언니들은 성큼성큼 잘도 올라가는 벽장에 혼자 못 올라가 쩔쩔 매다가, 겨우 겨우 혼자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다리길이쯤이 되었을 때 그 집을 떠난 듯하다. 그 집 마당의 진돗개는 그 후로도 얼마동안이나 주인행세를 하며 살았을까.

승동교회를 뒤덮던 은행의 구린 냄새, 사직공원의 뚱뚱한 비둘기들과 돌로 만든 미끄럼틀, 황학정에서 활을 쏘던 아저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간, 놀러 가면 라면을 끓여주곤 했던 배화여고 미술선생님. 누하동, 체부동, 필운동, 통의동....그 집을 떠나고도 나는 그 동네를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 동네를 떠난 뒤에도 내 마음은 오랫동안 그 둥글고 완전한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을 배웠던 그 고향이, 그래서 나는 애틋하고 자랑스럽다. 나는 서울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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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