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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2 그들의 집을 들여다보다 by 휘발성고양이
  2. 2008/04/03 "고통"의 다른 이름은 없다. by 휘발성고양이
  3. 2008/02/21 혼자있기 by 휘발성고양이 (2)
  4. 2008/02/19 낙장불입 by 휘발성고양이
  5. 2008/02/09 징조에 대하여 by 휘발성고양이 (6)
  6. 2007/08/04 사교성과 사회성 by 휘발성고양이 (16)
  7. 2007/07/14 by 휘발성고양이 (8)
  8. 2007/07/09 책을 뜯다 by 휘발성고양이 (6)
  9. 2007/07/07 Tell me the truth. by 휘발성고양이 (2)
  10. 2007/06/22 편지를 보내다 by 휘발성고양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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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인숙_4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9.5×100cm_2008_이미지 속닥속닥


집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들여다본다. 폰카로 찍은 조악한 사진들은 삶의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적나라하다. 좁은 원룸의 싱크대에는 설거지해야 할 그릇들이 쌓여있고, 화장실 선반 위에는 갖가지 브랜드의 제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방석은 납작해진 채 의자에 떨어질 듯 붙어있고, 키보드 옆에는 각종 컵들이 놓여있다. "이사준비하느라 못 치워서.."라는 변명은 그나마 애교다. 최소한의 변명도 없이, 제 몫의 삶이 저질러놓은 흔적들은 가감없이 게시판에 올라간다.

그러한 삶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건 묘한 중독성이 있다.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은 슬리퍼, 죽은 화분들, 제 자리란 게 없이 굴러다니는 듯한 쿠션, 오래전부터 비뚤게 놓여있는 듯한 TV. 멍하니 클릭클릭클릭클릭, 사진들을 넘겨본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나라고 다를 것 없듯이, 그들이라고 다를 것 없구나.

통속적인 가요의 가사를 들으며 저건 내 얘기야, 가슴을 친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너무나 통속적이어서 흔연하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나만 다를 거라고 다르지도 않고, 남들도 다르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이렇듯 닮은 꼴인 삶의 비루함. 그 닮음이, 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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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TAG 닮음, ,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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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희_오렌지스카이_orange sky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7)

날것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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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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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인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07



혼자있는 시간이 늘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정적으로도 그렇다. 거의 모든 만나자는 연락을 거절하고 웬만해서는 술자리도 가지 않는다. 엊그제 연락한 후배 영화감독은 거절당하자 "배우 스케쥴 잡는 것보다 만나기 더 어렵다"고 투덜거렸다. 미안하긴 해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야 할 때가 언제고 아닌 때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쨌든, 혼자 있어야 할 때다.

고양이를 간호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일이 많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만만찮은 이유지만, 내가 지금 혼자 있어야 될 때라는 기묘한 자각도 한 몫 하고 있다. 혼자 있는 게 즐거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더 고통스러울 때다. 하지만 지금을 견디지 못하면 안 된다. 지금을 견디지 못한다면 아마도 나는 이후의 시간들을 사람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살 거다. 이상한 예감이다. 경계가 가까웠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나 스스로를 가둔 섬은 천국이 아니다. 천국이라고 해서 더 견디기 쉬울 리는 없지, 그런 생각으로 혼자 벽을 보고 앉아있다. 사실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 유사천국과 모의천국들 사이에서 한 시절 잘 놀았으니, 지금은 어쨌든 혼자 견뎌보자.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이 어렴풋한 확신 속에서. 내 스스로의 손으로 씌운 엘리자베스 칼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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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진_낙장불입_embossed works on wood_45 x 45cm_2006


땀에 젖은 손으로 고스톱을 칠 때처럼, 손에서 패가 잘 떼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끈적한 체액이 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머리로 모든 상황이 파악된다고 해서 몸이 냉큼냉큼 따라가는 건 아니다. 몸이 냉큼 따라가기는 커녕, 뇌하수체에 무겁게 매달리기도 한다는 걸,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다.

짧은 낮잠 내내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꾸었다기보다는, 불편한 심기가 묵직하게 눌러댔다. 천천히 명징한 정신이 돌아오면서 내가 처한 상황이 내 심기만큼이나 복잡다단하고 불편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럴 땐 눈 뜨고 차근차근 헤아리는 것이 필요한데, 몸은 자꾸 눈을 감고 외면하라 한다. 편치않은 심기를 고스톱판의 담요처럼 깔아두고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패를 내던져야 하는 악몽같은 게임판으로 돌아가라 한다.

낙장불입, 낙장불입. 버릴 것은 버리고 헤아려둘 것은 헤아려두어야 한다. 차근차근 끝낼일은 끝내고 끝내야 하는 일은 끝낼 일정을 잡아두어야 한다. 원하지 않아도 모든 일들은 시작할 때가 되면 또 시작한다. 쌓아둔 더미에서 새 패를 가져오듯, 매일의 일상이 내게 착실하게 배달해주는 것들을 받아두려면, 버려야 할 게 많다. 손바닥을 허벅지에 슥슥 문대고, 다시한번 호기롭게 던진다. 던진 패는 잊어버리는 게 수다. 이미 머리로는 알고있는 일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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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현_#02630_종이에 혼합재료_100×150cm_2007



요도크가 아파서 병원으로 실려가고 성공률이 희박한 수술을 하는 동안 내내, "징조"에 대해서 생각했다. 요도크는 끊임없이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위험한 상태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일련의 징조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그 징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람과의 관계 또한, 다양한 징조들이 일어나고 눈앞을 스쳐지나가는데 무시하거나, 혹은 무시하려고 했다. 징조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어느새 연탄가스에 중독된 듯 그로기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부주의하거나 무신경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바라는 바와 다르기 때문에 놓쳐버리거나 눈 질끈 감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

잠수함속의 토끼처럼 예민할 일이다. 모든 징조들을 심상치않게 받아들일 일이다. 결국 일이 일어난 뒤에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는 둔감한 시간들은 내 발목을 잡고 내 뒷머리를 내리친다. 느닷없이, 라고 억울해할 수도 없는 일. 수다장이 징조들이 속살거리는 소리를 내 귓등으로 듣지 않았던가. 모든 일이 일어나고 난 뒤에야 내가 흘려들었던 그 수많은 징조들이 부끄러운 지도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놓쳐버린 모든 것들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시커먼 입을 벌린다. 내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징조를 무시해서. 징조를 애써 무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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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경_Face_종이에 콘테_130×104cm_2007_이미지속닥속닥)


나의 사회성. 어디에도 척척 걸리는 나의 사회성. 여섯 단계까지 거치지 않더라도, 몇 번만 말 섞으면 어렵지 않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솎아낼 수 있는 넓은 발이 나름대로는 장점이었다. 그에게 은근슬쩍 자랑하듯 나의 사회성을 얘기하다보니, 이것참 이 사회성이란 게 사회성이 아니다. 내 사회성은 조직과 규율, 불문율과 처세술이 횡행하는 사회에서의 사회성이 아니다. 내 사회성은 그보다는 동물의 사회성을 닮았다. 늑대의 사회성. 꿀벌의 사회성. 잉어의 사회성.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만나면 마냥 놀 뿐이다. 내 사회성은 수평의 사회성. 느슨한 사회성. 인간의 사회에 발끝을 걸친 채 위태롭게 넘어 다니는, 애정을 빼면 앙상한 줄기조차 남지 않는 사회성이다.

그에 비해 그의 사회성은 말 그대로 사회성이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만나는 사람의 폭도 협소한 그는 인간 사회의 돌아가는 법칙을 잘 알고 있다 했다. 그러기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조직에서 잘 견디며, 순조롭게 항해한다. 그의 사회성은 수직의 사회성. 치열한 사회성.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람이 어디쯤 있는 건지, 나는 도통 가늠이 안 된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읽던 책에서 나는 "사교성"과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낸다. 엘리아스 카네티가 구분해낸 군중의 다양체와 무리의 다양체 중에서, 굳이 억지로 나누자면 나의 "사교성"은 무리의 다양체에 가깝다. "흩어짐. 분해될 수 없으나 가변적인 거리들, 잔류자나 횡단자로서의 불평등. 고정된 총체화나 위계화의 불가능성, 방향들의 브라운 운동적 다양체, 탈영토화의 선들. 입자들의 투사." 무리 속에서 각자는 남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혼자다. 각자는 패거리에 참여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하며, 언제나 자신이 가장자리에 있음을 깨닫는다. 가장자리에 있다가 안쪽으로 가게 되고, 안쪽에 있다 이내 가장자리로 오게 되는 브라운 운동. 그 안에 내가 있다.

"사회성"은 군중의 다양체에 가깝다. "거대한 양, 구성원들의 가분성과 평등함, 중앙집중, 집단 전체의 사회성, 일방적인 위계의 방향, 영토성이나 영토화의 조직, 기호들의 방출." 그 안에서 사람들은 획득한 것을 확고히 하고 자본화하며, 안전하게 군중 속에 묻어있고, 중앙에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그가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진화적으로 미개한 상태를 나타낸다고 할 수는 없다. 무리와 군중은 분리되어있지조차 않다. 군중 속에는 무리가 있고 무리 속에는 군중이 있다. "어떤 군인은 늑대가 되고 어떤 군인은 개가 된다." 그리고, 늑대와 개가 만나서 한담을 나누는 시간이 있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레모네이드 한 잔을 놓고 마주 앉아. 그것 참 이상하다. 개의 늑대성과 늑대의 개성은 어디서 만나는 것일까. 뭉클뭉클한 다양체의 다양함 속에서의 마주 바라봄이 있었다. 서로의 길을 가다가 만나듯,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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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이미지 2007/07/1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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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현주_Hand_대리석_70×49×76cm_2007_이미지 속닥속닥)

내가, 커어다란 하나의 손이 되는 날이 있다. 내 커어어다란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덥썩 잡는 날. 잡고 힘차게 흔들며 악수하는 날. 마치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아요, 라는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 하나하나와 악수하는 날이 있다. 사람들이 어찌나 곱고 탐스러운지, 그 사람들과 같이 세상을 살아갈 요량을 품는 게 얼마나 손금처럼 자명한지.

그런 날이면 나는 악수하는 손, 에 딸린 가느다란 실뿌리 같은 몸이다. 그런 날 내 손을 잡은 이들이여, 그것이 손뿐이 아니란 걸 기억해주길. 내손과 당신 손 사이에 핏줄이라도 흐를 것처럼 애틋한 그런 마음, 가지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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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TAG 사람, , ,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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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현_책-뜯다 Books-pluck off_이미지속닥속닥)

이지현 ● 작가 이지현은 주로 국어, 국사, 도덕 같은 교과서를 뜯는다. 근래에는 본인의 태생과 비슷한 시기 흔적을 간직한 6~70년대 서적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더불어 성경, 악보, 사전 그리고 오래된 잡지도 자주 사용한다. 책은 사실이든 허구든 시대의 메시지를 담는다. 일순간도 놓쳐서는 안 될 역사를 빼곡히 기록한 책도 있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화려하게 포장된 책도 있다. 내용은 달라도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책의 본질이다. 작가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 시대,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자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고스란히 투영한다는 책을 ‘뜯는 행위’는 작가에게 일정 부분 그 해답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현대 회화에 있어 ‘그리지 않았다’라는 의미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단지 노동이란 전통적 회화의 용광로 속에 용해시켜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되는 것에 불과하다. 서양화가 전공인 작가는 “노동은 작업을 풀어가는 데 여전히 중심에 서 있으며, 부인하려 해도 부인 할 수 없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작품에서 한 땀 한 땀 해체하듯 뜯어내는 행위야말로 대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행위이고 이로써 손에 의해 대상은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하게 된다. ‘뜯는다’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지극히 개인적 행위의 기록일 수 있다. 작가는 그리기를 거부함으로 지금껏 감춰진 이면이 드러나게 된다 생각한다. 즉, ‘뜯음’으로써 생기는 보푸라기 같은 ‘부유’하는 이미지는, 곧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떠도는(부유하는) 우리 시대 인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미지 속닥속닥에서)


....우리고양이들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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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훈_Tell me the truth_메조틴트_70×50cm_2007_이미지 속닥속닥)

내밀한 기억들은 입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초라해진다. 그 초라한 기억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을 보는 내 자세는 어느덧 삐딱해진다. 상체는 뒤로 기울어지고 입가에는 냉소가 떠돈다. 결국 그런 것. 그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것. 그것들을 품고 있었던 순간들조차 앙상하게 타들어간다.

그러므로 내밀한 기억들을 지키는 방법은 말하지 않는 것. 진실을 지키는 방법은 말하지 않는 것. 그러나 그것들이 울컥울컥 목구멍으로 치밀고 올라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 기억들이, 내가 알고 있는 진실들이 초라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안의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바래기위해 햇볕에 천 한 장 널어놓듯 멱살잡아 환한 백주대낮으로 끌고 나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내면의 절박한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내 속에 앙상한 구멍 하나 생긴다. 그 구멍으로 들락거리기도 하고 엿보기도 하고 구멍속에 숨기도 하고 구멍안에서 놀기도 한다. 내가 스펀지처럼 구멍 송송 나지 않으면, 내 안에 내가 놀 곳이 없다. 내가 썩어들어가고 바래들어가고 타들어가지 않으면 내 안에는,

나불나불 블라블라 떠드는 밤. 촛불처럼 내가 속부터 타들어가던 밤이 있었다. 그 밤들이 있어 대낮의 내가 써먹을만해진다. 얼추, 아쉬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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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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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_Unsaid Letter_드라이포인트, 석판화, 꼴라쥬, 혼합재료_
                        57×44cm_2007_이미지속닥속닥)

파란 블로그의 글들을 천천히, 말 그대로 천천히 옮기고 있다. 눈에 띄지않을 정도로. 바닷물을 컵으로 떠 나르듯 그렇게. 누군가 굳이 글을 옮길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고, 생각해보니 꼭 옮길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굳이 한 편 한 편을 찾아내어 옮긴다. 그 글을 썼던 날씨와 시간을 초단위까지, 빠뜨리지않고 옮긴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읽는 이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보통은 불특정한 다수를 생각하고, 어떨 땐 특별한 몇몇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 글을 읽는 독자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블로그의 글들을 다시 뒤져보니 알겠다. 내 블로그 글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독자는 나다.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듯이, 내가 살고 있는 주소로 엽서를 보내듯이 글을 써왔다. 그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했을 뿐.

오래오래 돌아 온 편지를 읽듯 그렇게 내 옛날 글들을 읽는다. 읽으면서 이 서랍에서 저 서랍으로 옮기듯 파란에서 이곳으로 한 장씩 한 장씩 옮긴다. 나는 여기에 살고 있고, 내게 말하고 있다. 옛날의 내가 나에게로든, 지금의 내가 옛날의 나에게로든. 발설된 것들은 결국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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