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며칠 후의 새벽에, 나는 딱 죽고 싶었다. 그랬다. 말 그대로 그냥 딱 죽고 싶었다. 잃음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 견뎌왔고 또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서 신물이 넘어올 지경이었다. 내가 잃은 것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그것들이 빠져나간 나의 나달나달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내 맨살. 맨살의 무방비함. 무방비함의 무력함. 무력한 채로, 그렇게 살아남아야 할 날들. 아스팔트에 맨 얼굴을 그대로 문지르는 듯한 통증의 나날들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그저 풀죽은 마음은 딱 죽고싶다..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내게 오는 것들은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 존재감도 없고 미약한 것들. 그것들은 나를 만나 내 속으로 들어와 천천히 자라나, 이윽고 거대하고 단단한 존재감을 가지게 된 뒤...그렇다. 그 뒤에 이별이 온다. 그러므로 만남은 사소하고 헤어짐은 치명적이다. 내가 발견하는 모든 사랑은 단지 상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이 인생, 어쩌면 좋단 말인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는 인생의 법칙이 아니다. 빼앗기고 빼앗기고 빼앗기고 드디어 빼앗길 것마저 없을 때,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남에게서 나를 빼앗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법칙 아닌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새벽에.
그리고 며칠 뒤. 한 문장을 만났다. 단골 우동집 아주머니가 가족을 잃은 내 슬픔을 다독이며 건네준 달력에 쓰여진 문장이었다. 등도 굽고 눈도 나빠져 좋아하던 자수를 할 수 없게 된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찰흙놀이를 권하였다 한다. 그렇게 만든 찰흙인형을 구워 도자기로도 만들고 찍어서 달력으로도 만들었다. 달력 안에는 어머니의 찰흙인형뿐 아니라 소박한 그림과 글씨들도 나란나란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썼다. "잘가거라. 올 때는 좋은대 나는 또 서운하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 그 글씨를 보면서 참 좋았던, 순간들이 문득 떠올랐다. 선물이었고 사랑이었고 축제였던 순간들. 마치 기적같았던 순간들.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지옥같지만, 그래도 또 그 시간들을 "좋았다"고 순수하게 기뻐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기쁨으로, "잘 가거라"라고 흔연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경지가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쓴다. 꾹꾹. 잘 가거라. 나는, 또, 서운하지만, 올때는 참, 좋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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