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맨해튼. (by M)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들은 경이롭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비슷비슷하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흔적들이 있고, 사람들이 살지 않으면 흔적이 없다. 그 뿐. 바로 그것이 경이로울 뿐.

하지만 뉴욕에 도착하면서 내려다본 풍경은 각별했다. 맨해튼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지표는 센트럴파크이다. 놀랍게 큰 공원이, 섬의 가운데에 반지의 알처럼 떡하니 박혀있다. 그 공원의 왼쪽 오른쪽 아래 위를 찬찬히 살피며 내가 걸어다닐 길, 내가 잘 방을 상상한다.

걸어보기 전에 내려다보는 것과, 걸어다니고 난 뒤에 내려다보는 건 확실히 다르리라. 아쉽게도 뉴욕을 떠날 때는 창가 자리에 앉지 못해서, 떠나면서 맨해튼의 맨 얼굴을 내려다볼 기회를 잃었다. 그 아쉬움을 처음 찍었던 동영상으로 달랜다. 미지의 땅이었을 때 찍은 그림들 속에, 내가 걸었던 길들이 얇게 겹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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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 10점
박사.이명석 글.그림/궁리

이번에는 그림도 많아요! ^^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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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근근한, 일기 2009/03/22 23:56

요즘의 나는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르다. 낮에는 살고, 밤에는 일한다. 낮에도 일하지 않는 건 아니고 밤에도 살지 않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왠지 어느 순간부터 그런 구획에 나뉘어진 듯 하다. 주간반 학생과 야간반 학생처럼, 같은 집에 담겨있지만, 사람이 다르다. 둘 다 나지만, 둘은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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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는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옛날 이야기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과 내가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들었던 이야기들. 아버지는 내 목소리에 얼굴을 찡그려 반응했지만, 결국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지 밝혀주지 않으시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셨다. 심장도 뛰고 숨도 쉬고 계셨지만, 이미 아버지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평온한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로 가신 아버지.

오늘의 아버지는 숨쉬는 기계 같았다.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영혼이 있다면 얘기를 하지 않아도 내 목소리를 들으실 테고, 영혼이란 게 없다면 이미 들을 귀가 없는 곳을 향해 말하는 형국이 되리라.

아버지의 냄새. 아버지의 숨소리.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과 알 것 같은 마음. 아버지도 많이 속상하셨지요. 그리고 저 그렇게 나쁜 딸은 아니었지요. 이 두 마디는 아마도, 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위해 했던 말 아니었을까.

나는 아버지를 가련해하는 만큼 나를 가련하게 생각해왔을 것이고, 아버지 또한 나를 가련해하는 만큼 스스로를 가련하게 생각해왔으리라. 그렇게 비스듬히 엇비켜, 아버지의 생애가 가고 내 생애가 간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할아버지와 비슷했고, 내가 죽는 모습 또한 아버지와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저주에 묶여 있다. 그리하여, 그와 나는 아둥바둥 멀고 어이없이 가깝다. 서로를 가련해하는 거울, 숨쉬는 거울.










(이 글을 쓰고 일곱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는 숨을 거두었다. 편안히, 미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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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9/03/14 10:03

아버지는 오늘 새벽 네시경 영면하셨습니다. 아버지의 평안을 빌어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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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곧 봄이 올 것 같은데, 안 온다. 아침마다 멍하니 시린 손을 마우스 위에 얹어놓고 방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린다. 어두워서 아늑한 내 집은 얼음동굴같다. 인터넷에는 속속 "봄날씨같다"는 얘기들이 올라오고, 나는 어서 이 얼음동굴을 탈출하여 햇살 아래의 봄날씨에 동참하고 싶지만, 굼뜬 관절은 느릿느릿. 따뜻한 커피 한잔을 찾아 부엌을 맴돌 뿐이다.

그러니, 내게 아직 겨울은 추억이 아니다. 겨울은 현재진행형이고, 영원히 오지 않을 봄의 대체재다. 극세사와 양털이불이 겹쳐 만들어내는 침대 위의 절대온기속에 누워서, 삶보다 현란한 꿈을 꾸고 앉았을 뿐이다. 이토록 가지않는 겨울이 심지어 좋기까지 하다.

하지만 말미에 붙은 겨울은 너무 불안정하다. 언제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여기서 행복을 느껴서는 안 된다. 어느샌가 안락하던 얼음방석은 사라지고, 맨 아스팔트 위에 부비고 있는 나를 발견할테니, 가는 것에는 마음을 주지 말아야지. 몸도 주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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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겨울

동그랗다

근근한, 일기 2009/02/02 02:41
요도크. 설날 선물로 들어온 청도반시 상자에 꽂혔다. 마루에 하나, 방에 하나 두고선 교대로 들어가본다. 긁어도 보고, 박스가 터지게 비집고 누워도 보고, 이빨로 꼭꼭 깨물어도 본다. 그렇게 좋아? 흉물스러워진 박스를 버리지도 못하고, 요도크 들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동그래져있는 걸 구경하기. 재밌다. 청도반시는 내용물도 맛있었지만, 상자도 꼭 마음에 드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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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근근한, 일기 2009/01/24 03:40

감기다.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은 기침 재채기와 콧물. 다행히 몸살은 없는듯하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다. 가장 귀찮은 건 역시 콧물. 하지만 재채기도 만만치 않다. 내 혼이 삼미터는 나갔다 들어오는 듯. 들어올때마다 엇비껴 들어앉는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다.

어제 밤 10시부터 자기 시작해서 낮 열한시에 깼다. 그것도 모자라서, 침대 속에서 자다깨다를 반복, 결국 느지막한 저녁에나 털고 일어났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자니 집안 꼴이니 정신머리니 다 어수선하고, 결국 책을 늘어놓을 책상 한 면 치우다 보니 지금 이 시간이 되었네. 그런데, 책상치우니 일하기 싫다. 이제는 잘 시간이잖아.

그러고보니 오늘 먹은 거라곤 남은 육개장에 떡 넣어 끓인 정체를 알 수 없는 떡국 한 그릇 뿐이다. 밥 해먹기도 너무 힘드네. 이럴 땐 누가 베드트레이에 조촐하게 한 상 차려주면 더할나위 없이 기쁠 듯 하다. 사실 누군가 와서 해준다고 하면 막상 귀찮을 것 같기도 하고, 배도 고프지 않지만, 그래도 빈속에 감기약 먹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래도 어쨌든, 청소하니 개운하다. 내 몸속의 감기도 청소하듯 밀어내야겠다. 싹싹, 싹싹한 비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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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감기, , 청소

       심현주_Waterfront-1.92Km_웹카메라, 빔프로젝트, 컴퓨터, 물고기, 어항_2008

사람이 죽었다.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어갔다. 누가 뭐라고 하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었다. 조금만 상식적이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망연자실할 일이다. 대성통곡할 일이다.

상식적이란 건 그런 것이다: 국민은 "적"이 아니다. 교통체증보다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사람을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충분히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려 해야 한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면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또다시 말하자면, 국민은 적이 아니다. 섬멸하고 때려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상식들을 무시할 때, 우리는 그 주체를 '범죄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범죄자가 아니고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량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이 착한 가장이고, 순종적인 국민일 때는 살 가치가 있지만 반항적이고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니었을 때는 살 가치가 없는가? 그들이 화염병을 안 던질 때는 보호해줘야 할 목숨이고 화염병을 던지는 순간 죽어도 상관없는 목숨이 되나? 그들이 그 지역의 철거민일 때는 죽은 게 좀 미안한 일이고, 그들이 그 지역의 철거민이 아닐 때는 당연히 죽어도 싼가? 경찰은 또 무슨 죄가 있는가. 명령에 등떠밀려 진입한 그의 순직은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살인자로부터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폭탄으로부터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보호해야 할 국민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나선 그의 죽음은 그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 와중에 경찰의 죽음과 철거민들의 죽음의 무게가 비교되고, "죽어도 싸다"는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말들이 난무하며, 그 와중에 면피하려 급급하고, 그 와중에 분노한 다른 국민들조차 싸그리 적으로 몰아붙이는 행태가 자행되고 있다. 상식은 여전히 없다. 여전히, 또 다른 죽음의 가능성들을 품고 무섭게 굴러간다.

20년전, 대학에 다닐 때도, 살인정권 고문정권 타도하자 외칠 때도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이렇게 황망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조그만 가게 하나 운영하면서 근근히 살아보려했던 사람이, 무려 사람"들"이 불에 타서 죽어갔다. 그리고 이토록 상식이 없는 사회에서는, 나 또한 죽을 수 있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그러는 당신들은 그렇지 않겠는가. 이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국민이므로, 국민을 "적"이라 여기는 정권이 권력을 잡은 나라에 산다는, 오직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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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미_2008년8월13일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50×45.5cm×5_2008_이미지속닥속닥)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부엌문이 있다. 부엌문을 열면 좁고 긴 뒷마당이 나오고, 집 모퉁이를 돌아서면 뜰이 나오고, 다시 집 모퉁이를 돌아서면 앞마당이 나온다. 뒷마당은 나름대로 숨겨진 공간이다. 대문으로 들어와 집 모퉁이를 두 번이나 돌아야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조금씩 음식을 내놓기 시작했다. 먹다 남긴 음식들이다. 고양이들이 자존심을 내세웠다면 기분나빠할만큼 초라한 음식이기는 하지만, 이 숨겨진 식당은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 하지만 절대 규칙적으로 내놓지도 않고, 자주 내놓지도 않는다. 강하게 꿋꿋하게 살아야 하는 녀석들의 일생을 책임져주지도 못하면서 의존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뜻밖의 선물같은 한 끼, 그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기대하며 들어섰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실망한 것인지, 차마 내놓지 못할만큼 양념이 진하게 되어있고 상한 내도 나는 장조림 고기에 욕심을 낸 것인지 손님들이 깡통에 단단하게 뚜껑도 덮어 내놓은 음식물쓰레기통을 습격했다. 습격한 공에 비해 성과가 없었을 게 미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배고팠으면 저 뚜껑을 열었을까 싶어 안쓰러웠지만 부러 마음을 굳게 먹고 며칠간은 음식을 내놓지 않았다. 매일매일 기대하고 들어섰을 고양씨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니겠나. 그리고 그것을 그들만큼 잘 아는 이들도 없을 것이었다.

오늘, 늘 개수대에 휙 버려버리곤 했던 날닭고기 핏물을 사료에 부어 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다봤더니 그릇이 반짝반짝할만큼 깨끗하게 비웠다. 뿌듯해라. 잠시후에 다시 내다보니, 이번에는 고양이들이 흩뿌려놓은 뒤 미쳐 치우지 않은, 고양이들이 먹지 않는 밥알들을 새들이 쪼아먹고 있다.

내가 무신경하게 버리는 것들이 그들의 특별한 한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내 생활을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수많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 몫을 독점하고, 내가 남긴 것들을 함부로 버린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 내 것도 아니었고 영원히 내 것도 아니지 않나. 조금만 신경을 쓰면 두루 혜택이 돌아갈 수 도 있다는 걸, 난 너무 자주 잊는다.

새로 사서 일부러 내놓을만큼의 너그러움이 없다면, 적어도 내가 버리는 것들이라도 다시 돌아보는 세심함이라도 가져봐야겠다. 이 집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게으름뱅이인 내가, 고양이와 새와 수많은 다른 생명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만큼 가까이서, 그들과 함께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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