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전화가 오기 전까지 이불속에 웅크리고 누워 한창 꿈을 꾸고 있었어요.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죠. 어둡고, 참 어두운 길. 낮고 작은 집들이 길 가에 조르르 늘어서 있는, 그런 골목이었어요. 그 집들 중 하나였죠. 야트막한 나무담장 안쪽으로는 작은 마당이 있고, 정면에 현관이 보였어요. 마당에는 나팔꽃인듯, 덩쿨식물이 벽을 따라 흐르고 있었죠. 벽 위로, 담장 위로, 꽃등이 늘어져 있었어요. 말 그대로 꽃등. 꽃마다 희미한 빛을 켜고 있었죠. 연보라색의 수많은 등이 오롯이 그 집만을 밝히고 있었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이곳이구나, 라고요. 저는 마치 우리집에 들어가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갔죠. 그곳이었어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죠. 그때 전화가 왔어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죠. 제 고양이가 입원해있는 병원의 원장선생님이었어요. 그날 퇴원하기로 한 날이라, 저는 잠에서 막 깬, 그렇지만 명랑한 목소리로 말 했죠. "아 선생님, 그렇잖아도 전화드리려 했어요. 오늘 퇴원을 몇시쯤...." 하지만 선생님이 전화하신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어요. 제 고양이가 막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전하기 어려운 소식을 전해야하는 전화였죠.
그날은 11월 1일. 전날 할로윈 파티로 신나게 놀고 난 참이었죠. 입원하고 매일매일 찾아가다가 하루 건너 뛴 게 하필이면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답니다. 다음날 퇴원하기로 했으니 마음이 해이해진 거였죠. 제 고양이는 오지 않는 저를 궁금해했을까요?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았을까요? 달려갔을 때, 아직 제 고양이는 따뜻했어요. 그래요. 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답니다. 죽지 않을 거라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뿐이었죠.
겨울이 지나고 그 다음해 설이었어요. 제 곁에 남아있던 또 다른 고양이가 심하게 아팠어요. 급하게 병원을 알아보는 사이, 저는 너무나 명백한 상실의 예감때문에 바들바들 떨었죠. 친구들은 나와 고양이를 차례로 차에 밀어넣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친구들은 고양이를 수술하는 동안 저를 답싹 들어다가 집에 데려가 따뜻한 밥을 먹여주었지요. 이불을 폭 덮어서 소파에 다독다독 재우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같이 있어주었답니다. 고양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건 밤 열두시가 넘어서였어요. 제가 그 소식을 듣고 웃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고양이는 다시 제 곁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그날부터였나봐요. 참 고맙더라고요.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 게 고맙고, 화장실 가면 화장실 가는 게 고맙고. 계속 살기위해 애쓰는게 고맙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게 너무너무 고마운 거에요. 회복의 과정도 쉽지 않았답니다. 오랫동안 끼니때마다 밥을 수저로 떠 먹여야 했어요. 제 입으로는 안 먹어도, 수저로 떠먹이면 꼴깍꼴깍 받아먹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한 그릇 다 비우고 나면 눈물이 다 글썽할 지경이었죠.
그 전해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도, 지금도 병과 싸우고 있는 고양이도 열 살이 넘었어요. 장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지는 않은 나이죠. 같이 있을 시간이 같이 있었던 시간보다 더 짧겠죠. 살가웠던 관계일수록, 끊어내기가 더 쉽지 않은 법이잖아요. 하지만 하루를 살면 하루가 더 짧아지는 건 명백한 사실이죠.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순간을 향해서 착착 발맞추어 걸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침에 눈을 떠 고양이를 볼 때마다 뭉클하게 올라오는 이 고마운 감정. 어느 날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지금 살아남은 고양이에게 고마운 만큼, 그 전해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에게 저는, 배신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건 아니었어요. 덕지덕지 묻어있는 죄책감, 최선을 다해 돌봐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슬픔, 상실감...이 모든 감정들을 살살 걷어내고 보니, 그 아래에도 단단하게 고마운 마음이 도사리고 있더라고요. 고마웠어요. 그리고 고마와하고 있어요. 내 곁에 살아서 같이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같이 누렸던 시간에 대한 고마움은 옹골차게 내 마음속에 꽉 들어차 있었죠.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고맙다"는 감정은 누가 나에게 뭔가를 해줬을 때 생기는 건 줄 알았어요. 사탕을 주면 고맙고, 밥을 사주면 고맙고, 돈을 주면 고맙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이들, 그들에게 의당 가져야 하는 댓가성 감정인 줄 알았죠.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줘서 고맙고, 자기 삶의 일부를 떼어내어 나와 얼굴 맞대고 지내준 그 시간들이 고맙고, 그들의 심장이 통통통 여전히 잘 뛰고 있어서 고맙고...그리고 고맙더라고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께도요. 돌아가실 때 크게 고생을 안 하신 것이. 돌아가시면서 온데 사람들을 한데 모아 서로 속내깊은 얘기를 나누게 해준 것이. 돌아가시고서 화창했던 날들에 대해서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니,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여전히, 그 분이 나와 맺고 있는 관계의 따뜻함이.
그리고 이제 와, 어렸던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던 어른들을 떠올려요. 그때는 무엇이 그분들 표정에 진심을 우러나게했는지 몰랐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네요. 아이들의 고마움. 그들의 팔딱팔딱 뛰는 조그만 심장에 대한 고마움. 어른들에 대한 고마움. 그들의 익숙한 손길에 대한 고마움. 짝, 하고 옹골찬 소리를 낼 때, 오른손에게 느끼는 왼손의 고마움. 작은 고양이에서 시작했던 마음은 뭉클뭉클 잘도 새끼를 낳더군요. 준 것과 받은 것의 양을 가늠하던 옹졸한 마음이 뜨거운 물 속의 라면스프처럼 붉게 퍼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괜찮겠더라고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고양이가 기어코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몇년이 될지 몇십년이 될지 모르는 어느 때에, 아, 이제 됐다. 나 잘 살았으니 이제 그만 쉴래, 라고 결정해도. 그래도 고마운 마음엔 한줄 금도 안 가겠더라고요.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들이 이토록 충만하게 고마운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괜찮겠더라고요. 고맙더라고요. 괜찮아서, 고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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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글을 쓴 게 몇년 전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저 글에 나온 살아남은 내 고양이가 다시 아프다. 처방식을 먹이다가, 괜찮을 듯 해 날닭고기를 첨가해먹이다가, 괜찮길래 어디선가 줏어들은대로 미숫가루를 섞어먹였더니 상태가 나빠졌다. 며칠째 어지러운지 잘 걷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맛있는 거 달라고 내가 부엌에 가면 비틀비틀 쫓아온다. 너, 처방식 말고는 안돼. 단단하게 일러도,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두눈 그렁그렁 해서 쳐다본다. 그 눈동자...
엊그제 수해를 당했다. 옆집의 수도가 터져서, 일어나 보니 내 방에 물이 가득 찼더라. 매트리스는 아예 버릴 작정을 했고, 일기와 책들은...어쩔 수 없다. 쓸 수 없게 되었다. 물을 퍼내고 나니 몇 년 전에 당했던 수해가 떠올랐다. 그때는 윗집의 수도가 터졌었다. 천정에서 주룩주룩 물이 쏟아졌다. 한겨울, 새벽 네시. 차단기가 내려가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안 되는 냉골의 방에서, 젖은 이불들 사이에 동그란 쿠션 하나 놓고 동그랗게 몸 말고 아침까지 짧은 잠을 잤다. 그때 내 품안에 같이 동그랗게 말려있던 고양이는, 지금 없다. 그날을 생각하며 짧게,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