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통지서가 왔다. 세상에 이럴수가, 엄마는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며 손을 떨었다. 기대와 걱정이 담긴 바르르. 봉투를 건네받는 나도 그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어찌 인간꼴을 하고 살 수 있겠냐며 삼수를 격려하셨지만 나나 엄마나 퍽 지친상태였다. 수험공부도 그랬지만, 천정부지로 솟는 등록금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되었다. 이번까지만 시도해보고 안되면...이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나도 부모님도 더 이상 시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바짝 긴장해야 했지만,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 공부는 흉내만 내고 아르바이트다 뭐다 쫓아다니는 모호한 생활이 이어졌더랬다. 그런데 대학입학통지서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을까.
봉투에는 서툰 한글로 우리집 주소가 쓰여있었고, 학교 이름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국제우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외국의 대학임이 틀림없다. 내가 외국의 대학에 지원한적이 있었던가? 열어보니 난해한 말로 가득 찬 통지서와 왕복비행기표, 그리고 열쇠가 하나 들어있었다. 열쇠는 마치 중세시대에서라도 온 듯 투박하고 묵직했다. 학교의 정체도 알 수 없었고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지만, 나는 열쇠를 보자마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쇠는 차갑게 쩍, 하고 내 손에 달라붙었다.
엄마는 비행기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남극, 이라는 말을 발견한 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집에서 가장 두꺼운 옷을 찾아 일어났다. 가장 커다랗고 두꺼운 아빠의 잠바를 가져온 엄마는 잠바와 나 사이를 채울 옷을 찾아 다시 일어났다. 가능하다면 뽁뽁이로라도 싸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잘 포장된 택배상자처럼 차려입은 내가 앉은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는 꼴을 보고서는 포기한 모양이었다. 스킨대신 부동액을 가져가볼래? 짐을 싸면서 엄마가 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냥 버터나 좀 싸줘. 에스키모인들은 그걸 얼굴에 바른대. 엄마는 집에 마가린밖에 없는데...중얼거리며 다시 비행기표를 들여다보았다. 꼭 가야겠니? 응. 꼭 가봐야겠어. 나는 열쇠를 쥐고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곳을 찾아갔는지는 아이고야, 말을 말겠다. 비행기와 배와 트럭과 썰매까지 온갖것들을 다 타봐야했다. 학교에 다니게 되어도 걱정이었다. 집에서 등하교하는 건 말도 안 되고, 원룸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보증금 백에 삼십 정도 되는 방이 있으려나? 풀옵션은 아니어도 되는데, 중얼거리다 그곳까지 짐을 옮길 것을 생각하자 역시 풀옵션이어야겠구나, 싶어졌다. 그러나 도착해서 보니 원룸이고 뭐고, 머물만한 곳은 나를 부른 이가 기다리고 있는 오두막 밖에 없었다. 잠깐, 오두막이라고? 대학이라고 하지 않았어?
남극대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잘 생긴 그 남자가 두 손을 벌려 환영할 때까지,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잘못 찾아오셨어요 그러면 어쩌나. 그 먼길을 되짚어 갈 생각에 암울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콧수염을 기른 푸른 눈동자의 남자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손을 덥썩 잡은 뒤 안으로 안내했다. 허름해보이는 오두막은 생각 외로 널찍했고, 낡은 가구들은 반질반질하게 잘 손질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방문이 여러 개 보였다. 내가 받은 열쇠는 저 방중 한 곳의 열쇠인 듯했다. 남자는 내 코트를 받아들고 의자를 권한 뒤에 따뜻한 차를 내 왔다. 이 곳에 온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지만 남극대륙의 해는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뜻밖의 연락을 받고도 이곳까지 직접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남자는 친근하게 말했다.
“이곳이...대학인가요?”
“그렇죠. 당연히 들어보셨겠지만, 이곳의 설립자는 남극을 연구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로버트 팔콘 스콧씨입니다. 스콧씨가 처음 이 대학을 설립했을 때 학생은 스물 네명이었고, 지금도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학생은 스물 네명을 유지하고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작은 대학이라고 할까요.”
“스콧씨라고 하면 혹시 남극점에 두 번째로 도착한 영국탐험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귀의 객이 되셨죠.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스콧씨의 유지를 이어 남극대학을 운영함으로써 그분의 공로를 기리고 있습니다. 사실 남극점에 몇 번째로 도착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아요?”
“한국에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답니다.”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학문에 기여한 바를 따지자면, 스콧씨의 남극탐험대는 혁혁한 성과를 냈습니다. 1901년 첫 번째 탐사 때 남극에서 보낸 삼년동안 두꺼운 책 열 두권 가량의 지리학 자료를 모아 출판했죠. 지리학자, 생물학자, 물리학자, 식물학자 등이 스콧씨의 대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탐험도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남극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채취해왔던 글로소프테리스 속의 고생대 후기 잎과 줄기 화석이 박힌 돌 16키로그램은 결국 시신 옆에서 거두어야 했지만 이 또한 남극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죠.”
“그럼 남극대학 남극학과인 건가요? 남극을 전공해봤자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요.”
내 말에 남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인 모양이다.
“취업이라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희가 공부하는 것은 남극만은 아닙니다. 남극대학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1911년이었죠. 당시 스콧씨와 대원들이 머물렀던 에반스곶의 베이스캠프에서 첫 겨울을 나는 동안 한 학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매주 삼일씩, 저녁식사가 끝나고 난 뒤 스콧씨가 직접 강의를 하셨죠. 주제는 비행의 미래나 일본의 예술, 어류기생충학 등이었어요.”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비행의 미래? 일본의 예술? 물고기의 기생충이 어쨌다고? 아무래도 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토익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어보였다. 나는 하마터면 근처에 가까운 토익학원이 있느냐고 물어볼 뻔했다.
“저, 그런데, 등록금은 얼마나 되나요?”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았다.
“무료입니다.”
“네? 무료라고요?”
나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대신, 저희 대학에서는 각자가 각자를 가르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학생 한 명이 한 과목을 담당하는 것이죠.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한국에서 오셨으니까 한국의 건축이라든가...”
가르친다는 얘기에 다시 한번 정신이 아득해졌다. 초등학생들에게 알바로 영어를 가르친 경험밖에는 없는데, 내가 뭘 가르친다고?
“저, 저는 영어과외밖엔 안해봤는데.”
나도 모르게 나간 말에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어라...영어 잘 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영어로 말할까요?”
맞아, 이 사람 영어가 모국어였지! 나는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사양했다.
“이곳에서는 강의뿐 아니라, 자유시간도 모두 본인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곳의 척박한 환경이 다른 유혹들을 뿌리치는데 도움을 주었죠. 이곳을 거쳐간 학생들은 음악을 듣거나, 시를 쓰거나, 수채화를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고 감성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이곳의 선배들이 남긴 글을 보면...”
“저기, 인터넷은 안 되나요? 미니홈피도 관리해야 하는데.”
남자는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해는 여전히 지고 있지 않은데 주변에 어둠이 깔린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 표정도 그러하리라. 나는 괜히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가린이 녹아 눅진눅진 목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극에 체류한 것은 단 하루로 끝났다. 푸른 눈의 남자는 가봐야겠다는 내 말에 여전히 친절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문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썰매로, 트럭으로, 배로, 비행기로 올 때의 역순으로 갈아타고 집으로 오면서, 문득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돌아와서도 여전히 아르바이트로 초등학생들 영어를 가르치고, 틈틈이 공부를 하고,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할당된 삶일까? 예측 가능한, “예측불가능한” 삶.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깜박잊고 열쇠를 돌려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열쇠는 여전히 가장 안쪽 주머니 안에 묵직하게 들어있었다.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채. 열어보지도 못했던 내 방의 열쇠. 푸른 눈의 남자에게 앞으로 부탁한다는 굳은 악수를 건네고 이 열쇠로 내게 할당된 방의 문을 열었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문득, 내 진짜 삶을 그곳에 두고 왔음을 알았다. 열어보지도 못한 방 너머에 내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손 안의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 ‘선택권을 갖고있다’는 말은 아닐지라도, 지금 이 곳의 삶에 남극의 명징한 바람을 가져다줄 수는 있으리. 나는 열쇠를 방문앞에 걸었다. 이제 이곳은, 나만의 대학이 될 것이다.
(월간 <페이퍼> 수록)
Posted by 휘발성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