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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의 작품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난 적이 있다. 작은 사진이었지만 놀라움은 컸다.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운 건 아니다.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운 거다. 예술이란 것은 머릿속의 것을 꺼내어 물질로 펼쳐놓았을 때 비로소 생명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서도호전은, 그 규모가 가지는 놀라움을 다시한번 만끽하게 한다. 그저, 직접 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찍어온 몇 장의 사진들을 늘어놓아본다. 내게 이 사진들은 그저 그날의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 실마리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버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인터넷에서 만났던 작은 사진 한 장이 나를 그에게 이끌었듯이.

 

 

 

 

 

 

 

 

 

 

 

 

 

천으로 정교하게 바느질되어 가느다란 몇 개의 철사로만 지탱되는 거대한 집. 크기면에서도 놀랍고 재현의 능력도 놀랍다. 특히 '집'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의 내게 그의 고민은 별똥별처럼 퉁 하고 날아와 박힌다.

 

 

 

 

 

 

 

 

 

내부의 가구와 소품들까지 정교하게 만들어진 집. 그리고 그곳에 와 박힌 한채의 집. 하나의 개념은 굉장한 퀄리티와 만나 압도적인 감동을 만들어낸다. 몇 시간이고 그 앞에 서 있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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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밤 열두시에서 더 깊은 밤 두시까지. 그때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하는 게 가장 좋을까, 해가 지고 밤으로 접어들면 달처럼 둥실, 즐거운 고민이 뜬다. 매일매일 그렇다. 책을 읽을까. 김치를 담글까.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가야지. 더듬이가 솟아나와 공기 중의 습도를 가늠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게 아니라면 습도는 많아도 좋다. 산책하기 가장 좋은 날씨는 악천후와 아주 가깝게 붙어있다. 특히 바람이 아주 많이 불어 밖에서 왈그랑달그랑 부딪치는 소리라도 나면 바지를 꿰어입는 손길이 바빠진다. 어서 나가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진다.

 

달이 예뻐도 마음은 길로 나선다. 읽던 책 접어두고 쓰던 글 팽개치고 편한 운동화를 찾는다. 하지만 달이 진짜 예쁜 날인지 아닌 날인지는 길로 나서봐야 안다. 매일매일이 다른 달의 얼굴. 너무 희미해서 흔적 같은 달빛을 받으며 걷는다. 스토커처럼, 그날 달의 일기를 쓴다. 이런 식이다. “오늘 달,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네. 며칠 전의 실처럼 가느다란 초승달도 예뻤는데. 세상엔 정말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니까. 참 못 믿을 일.(11.2.9)” 완벽하게 아름다운 달은 완벽함과 동시에 변화무쌍하다. 그러니 어떤 날은 이런 일기를 쓸 밖에. “자라섬에서 딱 자른 반달, 보았는데 고새 살이 토실토실 올랐네. (10.10.21)”

 

어떤 날은 달의 사진도 곁들인다. 밤에 핸드폰으로 찍는다고 덤벼봐야 얼마나 잘 담길까. 그래도 아주 달이 밝은 날이면 어쭙잖게 시도해본다. “쨍한 달. (10.09.23)”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저 검은 하늘에 구멍뚫린 모양처럼 영 폼이 안 난다. 그래도 사진은 기억을 건드린다. 그날의 쨍한 달. 명암이 뚜렷했던 그림자. 달이 예쁜 날은 달이 만든 그림자도 예쁜 법이다. “겹쳐진 나뭇잎 그림자가 섬세한 레이스 같아서 한참 쳐다본다. 처음 레이스를 만든 사람은 바닥에 드리워진 나뭇잎 그림자 같다며 감탄했겠지. (10.07.15)”

 

달이 늘 내게 인심이 좋은 건 아니다. 완벽하게 예쁜 얼굴을 보여주는 날이 있는가하면 꼬리뼈 감추기에 바쁜 날도 있다. “산길이 구불구불하여 달도 왔다갔다, 구름이 구불구불하여 달도 보였다 안보였다. 달구경하러 나왔다가 땀만 빼고 가네. (10.07.26)” 그날 땀만 빼진 않았을 터. 올려다보고 돌아다보며 부지런히 달의 흔적을 눈으로 좇았을 터. 그래도 풍성하고 묵직한 달, 보고 싶은 마음이 아쉽긴 아쉬웠나보다.

 

달은 눈에만 보기 좋은 게 아니다. 내 오감을 향해 손을 벌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달을 만지고 맛보고 싶어 한다. “저토록 예쁜 반달! 반 똑 잘라먹은 것처럼 매끈한 절단면. 핥고 싶다. (10.06.05)”고 열망하거나 “…그리고 달. 손톱으로 할퀸 듯한 자국을 내며 구름이 흘러간다. (10.04.30)”며 피부로 느낀다.

 

달의 무게, 달의 색도 매일매일이 다르다. “염주 굴리기도 손 시려운 이 날씨에 개나리가 폈네 했더니 어쩐지. 상한선이 낮다. 오늘 달 엄청 붉고 무겁네 했지만 그래도 달이라고. 하한선이 높다. (10.04.04)” 개나리 꽃피는 추운 봄, 길가에서 올려다본 붉고 무거운 달. 그 며칠 전만 해도 “반달이 뽀얘서 날이 흐린 걸 알겠다. 모든 게 적당한 날.(10.03.24)”이라 했건만. 달은 계절도 시간도 상관없이, 제 하고픈대로 제 몸무게를 바꾼다. 안면을 바꾼다. 변덕스럽기가 고양이 같다.

 

그래서였을까. 그날은 이렇게 생각했더랬지. “하반신만 붉고 낮게 떠있는 무거워 보이는 달. 여기서 보니 미소만 남은 체셔고양이 같아. (10.03.08)” 새벽 두시 이십사분의 체셔고양이. 그 달을 올려다보며 나를 지그시 누르는 묵직한 엉덩이 같은 달의 체온을 생각했다. 그렇게, 달은 날 자꾸 제 곁으로 오라 불러냈더랬다. 목이 부러져라 달 올려다보던 숱한 날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모든 날들. 나는 밤 열두시에서 밤 두시 사이의 달의 얼굴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그 얼굴들은, 동글동글 부황자국처럼 몸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차창 밖으로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달목욕”이라는 플랭카드를 본 건 부산에서였다. 물어보니 부산에서는 한달 단위로 목욕탕을 끊는 것을 “달목욕”이라고 한다고 한다. 달목욕을 끊는 사람은 헬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광고도 붙어있더라. 하지만 왠지 나에게는 달목욕이 달빛으로 하는 목욕 같다. 달과 얼굴을 마주하고 보내는 나른한 시간, 그때 나는 달로 목욕한다.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 찍듯이 달의 얼굴 찍는 매일. 그래서, 나는 차마 일찍 잘 수가 없다.

 

 

(월간 <페이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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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그 맵싸한 음료를 한잔, 삼키고 나면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모든 것이 느려지거나 빨라졌다. 밤만 되면 목이 말랐고, 목이 마르면 자연히 검갈색의 차가운 병이 떠올랐다. 술집이 많은 동네에 사는 게 죄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술집이 발에 채였다. 해가 뜰 때쯤에야, 마치 한시절 다 산듯 늙은 얼굴로 술집에서 타박타박 걸어 나왔다. 친구들이 수군수군 걱정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중독이었다. 알콜중독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할 경미한 증상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술이 없으면 살 수 없었다. 차가운 술병과 뺨을 맞대고, 그렇게 거듭거듭 윤회를 돌듯 매일을 살았다. 겨우 한 시절이었지만 그때 작동했던 시간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내려놓는 술병의 바닥이 테이블을 닳게 해 뚫고 바닥에 닿았으리. 그렇게 억겁의 시간이 갔다.

 

술집을 떠나며 나는 또 다시 중독될 것을 찾았다. 스마트폰이 나를 삼켜버린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작은 화면에 코를 박고, 나는 조잘조잘 흐르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임라인’이 ‘흐른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었다. 째각째깍째깍째각, 초침 돌아가듯 새로운 이야기가 떴고, 옛 이야기는 사라졌다. 시계에 갇힌 사람처럼 나는 그렇게 한발 뒤늦게 초침을 따랐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하는, 절망.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마디의 감각이 없어지는, 절망. 목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절망. 급기야는 눈이 보이지 않는, 절망. 토막 난 절망들은 금단증상으로 이어졌다. 내가 중독된 것들은 처음에는 시간을 내놓으라 했고, 생활을 내놓으라 했고, 소 한 마리 저며 내듯 몸을 한 부위씩 내놓으라 했다.

 

그랬다. 내가 중독된 것들은 내게 내놓으라는 게 많았다. 그때도 그랬다. 네가 내게 중독되었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내가 네게 중독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내게 시간을 달라고 했고, 생활을 달라고 했고, 급기야 내 몸속으로 파고들려 했지. 나는 네게 시간을 달라고 했고, 생활을 달라고 했고, 마치 내가 너인 것처럼 굴었다. 우리는 각자에게 점거된 채 각자의 속으로 파고들었으니, 서로 부딪쳐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이마를 맞대고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너를 곁에 두고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나. 그런 나를 보며 금단현상에 괴로워하는 너. 사랑이라는 게 그렇더라. 주었다 빼앗는데 주는 사람도 빼앗는 사람도 없더라. 고통스럽게, 나는 중독에서 걸어나왔다.

 

나를 중독시켜온 것들의 이름을 옛 애인 헤아리듯 헤아려본다. 한때는 만화방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지. 그때 나는 만화방에 가기 위해 돈도 훔칠 기세였다. 컴퓨터 카드놀이에 몰입해 있을 때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저 카드 낱장으로 보일 뿐이었다. 인터넷에 빠져있을 때는 인터넷 없는 곳에 가면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목욕에 중독되었을 때는 하루 몇 시간씩 물속에서 살다가 결국 심장통증까지 얻었다. 분노에 중독된 적도 있었고 슬픔에 중독된 적도 있었다. 그 모든 중독들을 어떻게 헤쳐 나왔던가. 내 의지로 나왔던 기억은 없다. 그저 버림받았을 뿐이다. 나는 쪽쪽 빨린 채, 단물 빠진 껌처럼 퉤, 하고 뱉어졌다. 내 삶의 나이테는 색깔이 다른 중독의 기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나이테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무색무취한 얼굴이 되었다.

 

어찌 중독되지 않을 수 있으랴. 중독의 그 무자비한 아름다움 앞에서.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욕망에 마치 전생부터 준비된 듯 꼭 맞는 요철. 오른손과 왼손이 깍지 끼듯, 내 욕망과 손 맞잡으면 내가 중독된 그것들은 날 놓지 않았다. 내 핏속으로 흘러 들어올 때까지. 백혈구와 적혈구 사이에 또다른 피톨로 유영할 때까지. 내 눈빛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고 말투를 바꾸고 생각을 바꿀 때까지. 그리하여 하나에 중독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었다. 겹겹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한겹 한겹 안의 나는 낯선 표정을 하고 있다.

 

그렇게 중독되어오면서 결국 내게는 독기만 남았다.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중첩된 독기들이 관절 사이사이에 쌓였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독기가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독기를 척추삼아 몸을 세우고 다니더라. 어떤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처럼 아침마다 독기를 배급받더라. 어떤 사람들은 양파껍질같은 독기로 똘똘 뭉쳐있더라. 그들을 중독 시킨 그 독은, 그들에게는 약이었다. 아니, 약이라 믿고 있었다. 그 독기 없이는 살 수 없노라며 그들은 한 방울이라도 흘러나갈까 바싹 추스르고 있었다. 으르렁으르렁 주변사람들에게 독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독기가 바싹 올라 외치는 말들은 외치는 자의 뼈에 새겨진다. 가각가가각 갉아낸 흔적들이 가득하다. 독기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독기로 물건하나 옮길 수 있을까. 독기로 풀잎 한 가닥 흔들 수 있을까. 밖으로 나가지 못한 독기는 그저 스스로의 뼈를 갉을 뿐이다. 제 이빨로 제 뼈를 잡아 뜯는다. 작고 뾰족한 이빨자국 가득한 뼈, 어느 날 풍화되며 햇볕에 나달나달 늘어서겠지. 제 짝을 잃은 활자들이 그저 흉터가 되어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겠지. 그래도 지금, 독기가 바싹 오른 지금, 날선 이빨이 허공을 물어뜯는다. 끊어낸 바람이 서로의 정강이뼈에 부딪친다.

 

그리하여 다시금, 중독될 그 무엇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욕망의 발견과 일시적 충족이 주는 가짜평화는 몸 안의 모든 소음을 잠재운다. 짧고도 격한 평화. 미끼처럼 던져졌지만 알면서도 물지 않을 수 없는 평화. 그러니 다시 한번, 우리가 중독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유혹적인데. 할 수만 있다면 그 품에서 고요히 늙어가고 싶은, 우리의 검은 어머니. 하지만 어느 것도 나를 궁극적으로 끌어안지는 못하였으니, 나는 너무 둔하거나, 비대하거나, 예민하거나, 연약했다. 어떤 중독에도 궁극적으로 중독될 수 없어, 톡 뱉어진 몸을 추슬러 다시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러니 결국 할 수 없이, 나는 독기하나 없는 진짜 평화에 가 닿을 것이다. 어떤 중독도 없이, 어떤 찌꺼기도 없이 그저 투명한 평화만이 내 몫으로 남았다. 독기 하나 없이 말갛게 하는 말들은 듣는 이의 심장에 새겨진다. 누구의 뼈도 상하게 하지 않고, 깊게 흔적을 남긴다. 부드러운 심장에 새겨진 말들은 결국 언젠가는 허공으로 휘발되리라. 그렇듯 문득 아무것도 남지 않고 없어질 그 순간이 되면 나는 아주 오래 산 나무처럼 선채로 그 자리에서 미소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독은 내가 통과해야 할 불타는 고리들. 수염 그슬린 호랑이처럼 여기까지 와, 물 한그릇같은 평화를, 찾는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젯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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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TAG 젯진, 중독

 

그녀는 웃으며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지난주 나눔의 집에 갔을 때 보았던 그림들이네요.” 그쪽에는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한쪽엔 할머니들을 찍은 흑백사진이 있고, 그 옆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주제와 작가의 작품들이 있다. <카페 앤트라싸이트>의 황량한 실내는 지난번에 왔을 때와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지금 전시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겠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솜씨같은 그림부터, 오브제, 흑백사진까지 분야와 장르가 다양하다. 한국작가와 외국작가들의 작품이 한데 모여 있다. 할머니들의 그림에 머물렀던 눈길은 잠시 허공을 헤맨다. 웅성웅성,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서로 다른 목소리, 나이도 높낮이도 다른 목소리들. 나는 잠시 멈춰서서 그 소리들을 구분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가로축으로 “투쟁”이 있다면, 세로축으로 “인생”이 있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투쟁이라면 낯설지는 않다. 지난 12월 14일 무려 1000회를 맞이한 일본대사관앞 수요집회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본군의 만행과 지금까지 이어져온 싸움을 모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전시는 그것에서도 한발 더 나간다. Alpha Newberry가 찍은 제주 강정의 싸움을 잡아낸 사진들 앞에서, 나는 울컥한다. 내 안의 여자가 또 다른 여자들에게 공명한다.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버티거나, 앙상한 몸으로 방패의 벽에 대항하는 여자들. 땅의 유린에, 몸의 유린에 맞서는 여자들. 투쟁은 번져간다. 하나의 적을 넘어, 하나의 사건을 넘어.

 

그러나 투쟁이 그저 투쟁으로 끝나는가. 우리는 평화롭게 블루베리 루이보스티의 향기를 맡으며 할머니들의 초상 아래 앉는다. Jonna Pedersen이 골판지에 그려 넣은 할머니들의 얼굴 아래서 두서없는 잡담을 한다.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갈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콧잔등이 꾸깃해질 정도로 온몸을 다해, 나눔의 집에 다녀왔더니 너무 좋았다며 행복을 표현한 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얘기한 경험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가보고 싶었어요.”나는 내 할머니를 떠올리며 웃는다. 그렇지. 억압과 투쟁이 전면에 내세워져있더라도, 그분들은 우리의 할머니다.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을 품은 하나하나의 인생들이 오롯이 탑처럼 서있을테다.

 

누군가는 왜 장기수분들에게는 ‘선생님’이라 칭하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할머니’라고 하느냐 항의하기도 하지만 할머니, 라는 말의 애틋한 어감은 어쩔 수 없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할머니를 Halmoni라고 쓴다. 그녀는 사진작품 속의 할머니를 한분한분 짚어가며 얘기해준다. 어느 할머니가 노래를 잘 하는지, 어느 할머니가 어떤 말씀을 해주었는지. 깊은 인생의 경험 속에서 나온 말들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격언이다. 하지만 아무나 찾아가서 쉽게 할머니를 뵐 수는 없다. 의욕에 가득차서 왔다간 뒤 아무 소식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할머니들은 이용당했다는 느낌에 지쳐있다고 한다. 그분들의 자글자글한 손마디를 찍은 사진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간다. 그분들의 인생에 대해서 상상해보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다. 어떤 말로도 섣불리 재단할 수 없으리라. 그러하니,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이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고민이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그녀 또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을 요즘에 실천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작가적인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여성뮤지션들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주제로 한 앨범을 내는 프로젝트. 시와, 황보령, 오지은 등 현재 십수 명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보컬로 활동해온 그녀, 송은지의 고민은 그렇듯 팀을 꾸리는 일부터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데까지 폭넓게 번진다. 우리의 수다는 그리하여 할머니를 중심에 두고 둥글게 멀리 퍼진다.

 

구체적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있다면 추상적으로는 “여성”이 있을 것이다. 여자로서 살아온 해가 만만치 않은 연륜을 이루었음에도, 여자를 잘 모르겠다. 여자는 어렵다. 그러나 또한 여자이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 제주 강정에서 싸우는 여자들의 마음, 사진으로, 작품으로, 음악으로 표현해보려고 고민하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작품의 층위는 다양함을 넘어 산만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오히려 너그럽지 않은가. 할머니들의 말없는 끄덕거림처럼.

 

(월간 <페이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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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대학 입학통지서가 왔다. 세상에 이럴수가, 엄마는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며 손을 떨었다. 기대와 걱정이 담긴 바르르. 봉투를 건네받는 나도 그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어찌 인간꼴을 하고 살 수 있겠냐며 삼수를 격려하셨지만 나나 엄마나 퍽 지친상태였다. 수험공부도 그랬지만, 천정부지로 솟는 등록금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되었다. 이번까지만 시도해보고 안되면...이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나도 부모님도 더 이상 시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바짝 긴장해야 했지만,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 공부는 흉내만 내고 아르바이트다 뭐다 쫓아다니는 모호한 생활이 이어졌더랬다. 그런데 대학입학통지서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을까.

 

봉투에는 서툰 한글로 우리집 주소가 쓰여있었고, 학교 이름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국제우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외국의 대학임이 틀림없다. 내가 외국의 대학에 지원한적이 있었던가? 열어보니 난해한 말로 가득 찬 통지서와 왕복비행기표, 그리고 열쇠가 하나 들어있었다. 열쇠는 마치 중세시대에서라도 온 듯 투박하고 묵직했다. 학교의 정체도 알 수 없었고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지만, 나는 열쇠를 보자마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쇠는 차갑게 쩍, 하고 내 손에 달라붙었다.

 

엄마는 비행기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남극, 이라는 말을 발견한 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집에서 가장 두꺼운 옷을 찾아 일어났다. 가장 커다랗고 두꺼운 아빠의 잠바를 가져온 엄마는 잠바와 나 사이를 채울 옷을 찾아 다시 일어났다. 가능하다면 뽁뽁이로라도 싸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잘 포장된 택배상자처럼 차려입은 내가 앉은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는 꼴을 보고서는 포기한 모양이었다. 스킨대신 부동액을 가져가볼래? 짐을 싸면서 엄마가 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냥 버터나 좀 싸줘. 에스키모인들은 그걸 얼굴에 바른대. 엄마는 집에 마가린밖에 없는데...중얼거리며 다시 비행기표를 들여다보았다. 꼭 가야겠니? 응. 꼭 가봐야겠어. 나는 열쇠를 쥐고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곳을 찾아갔는지는 아이고야, 말을 말겠다. 비행기와 배와 트럭과 썰매까지 온갖것들을 다 타봐야했다. 학교에 다니게 되어도 걱정이었다. 집에서 등하교하는 건 말도 안 되고, 원룸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보증금 백에 삼십 정도 되는 방이 있으려나? 풀옵션은 아니어도 되는데, 중얼거리다 그곳까지 짐을 옮길 것을 생각하자 역시 풀옵션이어야겠구나, 싶어졌다. 그러나 도착해서 보니 원룸이고 뭐고, 머물만한 곳은 나를 부른 이가 기다리고 있는 오두막 밖에 없었다. 잠깐, 오두막이라고? 대학이라고 하지 않았어?

 

남극대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잘 생긴 그 남자가 두 손을 벌려 환영할 때까지,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잘못 찾아오셨어요 그러면 어쩌나. 그 먼길을 되짚어 갈 생각에 암울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콧수염을 기른 푸른 눈동자의 남자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손을 덥썩 잡은 뒤 안으로 안내했다. 허름해보이는 오두막은 생각 외로 널찍했고, 낡은 가구들은 반질반질하게 잘 손질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방문이 여러 개 보였다. 내가 받은 열쇠는 저 방중 한 곳의 열쇠인 듯했다. 남자는 내 코트를 받아들고 의자를 권한 뒤에 따뜻한 차를 내 왔다. 이 곳에 온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지만 남극대륙의 해는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뜻밖의 연락을 받고도 이곳까지 직접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남자는 친근하게 말했다.

“이곳이...대학인가요?”

“그렇죠. 당연히 들어보셨겠지만, 이곳의 설립자는 남극을 연구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로버트 팔콘 스콧씨입니다. 스콧씨가 처음 이 대학을 설립했을 때 학생은 스물 네명이었고, 지금도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학생은 스물 네명을 유지하고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작은 대학이라고 할까요.”

“스콧씨라고 하면 혹시 남극점에 두 번째로 도착한 영국탐험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귀의 객이 되셨죠.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스콧씨의 유지를 이어 남극대학을 운영함으로써 그분의 공로를 기리고 있습니다. 사실 남극점에 몇 번째로 도착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아요?”

“한국에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답니다.”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학문에 기여한 바를 따지자면, 스콧씨의 남극탐험대는 혁혁한 성과를 냈습니다. 1901년 첫 번째 탐사 때 남극에서 보낸 삼년동안 두꺼운 책 열 두권 가량의 지리학 자료를 모아 출판했죠. 지리학자, 생물학자, 물리학자, 식물학자 등이 스콧씨의 대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탐험도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남극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채취해왔던 글로소프테리스 속의 고생대 후기 잎과 줄기 화석이 박힌 돌 16키로그램은 결국 시신 옆에서 거두어야 했지만 이 또한 남극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죠.”

“그럼 남극대학 남극학과인 건가요? 남극을 전공해봤자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요.”

내 말에 남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인 모양이다.

“취업이라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희가 공부하는 것은 남극만은 아닙니다. 남극대학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1911년이었죠. 당시 스콧씨와 대원들이 머물렀던 에반스곶의 베이스캠프에서 첫 겨울을 나는 동안 한 학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매주 삼일씩, 저녁식사가 끝나고 난 뒤 스콧씨가 직접 강의를 하셨죠. 주제는 비행의 미래나 일본의 예술, 어류기생충학 등이었어요.”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비행의 미래? 일본의 예술? 물고기의 기생충이 어쨌다고? 아무래도 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토익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어보였다. 나는 하마터면 근처에 가까운 토익학원이 있느냐고 물어볼 뻔했다.

“저, 그런데, 등록금은 얼마나 되나요?”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았다.

“무료입니다.”

“네? 무료라고요?”

나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대신, 저희 대학에서는 각자가 각자를 가르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학생 한 명이 한 과목을 담당하는 것이죠.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한국에서 오셨으니까 한국의 건축이라든가...”

가르친다는 얘기에 다시 한번 정신이 아득해졌다. 초등학생들에게 알바로 영어를 가르친 경험밖에는 없는데, 내가 뭘 가르친다고?

“저, 저는 영어과외밖엔 안해봤는데.”

나도 모르게 나간 말에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어라...영어 잘 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영어로 말할까요?”

맞아, 이 사람 영어가 모국어였지! 나는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사양했다.

“이곳에서는 강의뿐 아니라, 자유시간도 모두 본인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곳의 척박한 환경이 다른 유혹들을 뿌리치는데 도움을 주었죠. 이곳을 거쳐간 학생들은 음악을 듣거나, 시를 쓰거나, 수채화를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고 감성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이곳의 선배들이 남긴 글을 보면...”

“저기, 인터넷은 안 되나요? 미니홈피도 관리해야 하는데.”

남자는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해는 여전히 지고 있지 않은데 주변에 어둠이 깔린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 표정도 그러하리라. 나는 괜히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가린이 녹아 눅진눅진 목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극에 체류한 것은 단 하루로 끝났다. 푸른 눈의 남자는 가봐야겠다는 내 말에 여전히 친절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문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썰매로, 트럭으로, 배로, 비행기로 올 때의 역순으로 갈아타고 집으로 오면서, 문득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돌아와서도 여전히 아르바이트로 초등학생들 영어를 가르치고, 틈틈이 공부를 하고,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할당된 삶일까? 예측 가능한, “예측불가능한” 삶.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깜박잊고 열쇠를 돌려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열쇠는 여전히 가장 안쪽 주머니 안에 묵직하게 들어있었다.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채. 열어보지도 못했던 내 방의 열쇠. 푸른 눈의 남자에게 앞으로 부탁한다는 굳은 악수를 건네고 이 열쇠로 내게 할당된 방의 문을 열었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문득, 내 진짜 삶을 그곳에 두고 왔음을 알았다. 열어보지도 못한 방 너머에 내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손 안의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 ‘선택권을 갖고있다’는 말은 아닐지라도, 지금 이 곳의 삶에 남극의 명징한 바람을 가져다줄 수는 있으리. 나는 열쇠를 방문앞에 걸었다. 이제 이곳은, 나만의 대학이 될 것이다.

 

(월간 <페이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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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고를 끝낸 시간은 새벽 세시. 멍한 머리를 흔들고 신발끈을 조여맨다. 밤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부암동으로 이사온 뒤 날씨에 예민해졌다. 비가 막 올 것처럼 꾸물꾸물하거나 안개가 차 있다면 산책하기에 좋은 밤. 적당히 바람이 불어줘도 좋다. 하지만 정작 빗방울이 떨어지면 좋지 않다. 너무 맑아도 은은한 맛이 없다. 밤이 깊을수록 들떴던 빛도 가라앉으니, 생각도 차분해진다. 그렇게 숲 가장자리의 오솔길을 한바퀴 돌고 온다. 집에 들어올 즈음, 하늘의 한쪽이 서서히 흐리게 밝아지는 것을 본다. 서울 속의 시골이라 불리는 동네에 사는 선물이다.

 

가끔은, 광화문쪽으로 산책의 방향을 잡는다. 모두가 잠든 인적없는 길을 걸어내려가면 조금씩 조금씩 불 밝힌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간판 밑 쇼윈도우에 눈 반짝이며 술잔을 나누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 한 톤 높아진 목소리. 즐거움이 새어나온다. 고된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 지칠만도 하건만, 이제 하루를 비로소 시작했다는 듯이 생기가 돈다. 쳐졌던 어깨가 꼿꼿하게 곤두서고, 후줄근한 와이셔츠가 조명 밑에서 하얗고 빳빳하게 살아난다. 그들의 옆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꿈꾸듯 대화에 끼어들어도 좋으리. 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부암동에 살기 전에 살았던 대학로에서 내 별명은 ‘지박령’이었다. 대학로에서 떠나면 힘을 잃는다는 면에서도 그랬고, 밤에만 출몰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몇몇 점찍듯 단골술집을 두고 밤새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집에 돌아와 잠잘 채비를 하다가도 문득 술한잔 생각나면 새벽 두시건 세시건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나섰다. 그 중에서도 지하에 있던 바, 그곳에서는 시간을 잊고 놀다 나오면 새벽을 넘어 아침해가 쨍, 하고 이마를 때리곤 했었지. 부신 눈 찡그리며 밤의 마법에서 벗어나 초췌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었던 기억. 그렇게 사귄 친구가 한둘이던가.

 

가끔, 둘은 어떻게 친구가 되었어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서로 얼굴을 보고 곰곰 되짚어 보면 술집 바에서 만난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술집에 앉아, 나는 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편견도 탐색도 없이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술잔에서 술이 퐁퐁 솟아나지는 않았지만, 술마신 우리들 입에서는 어찌 그리 퐁퐁 재미있는 화제가 솟아나던지. 그렇게 우리는 밤의 힘 아래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술집에서 만난 술친구들이 더 격의없는 이유다.

 

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밤에는 낮보다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 밤의 조명 아래 우리는 더 영민하고 아름답고, 훨씬 더 자신을 잘 드러낸다. 낮의 햇볕아래 산만하게 흘러가던 생각들은 밤의 날개 밑에 명료하고 깊어진다. 심야라디오의 음악은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바로 나를 향해 속삭이듯 다가온다. 하물며 산책을 하더라도, 밤의 산책은 잡다한 것을 다 지우고 오롯이 길이 떠오르게 해준다. 내가 가는 길.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을 걷기 위해 나는 밤만 되면 나가고 싶어지나보다. 친구들이 있는 오롯한 섬 같은 술집으로 가고 싶어지나보다.





(어디에 수록한 원고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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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네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화롭게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 또한 네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작은 옷에 묻은 얼룩같은 것, 딱 한점 튄 얼룩같은 것이었다. 언 듯 보면 보이지도 않을 그것. 저녁에 세탁기에 넣어버리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없어질 그것. 인생이니 삶이니 하는 단어들은 가당치도 않을 그것.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의 평화 속에서, 나는 꼬물꼬물 늙어가고 있었다.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숨쉬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먹으면서. 아무것도 밖에서 나를 찌르지 않았고 나 또한 나의 밖을 향해 휘적대지 않았으니, 닿을 듯 닿지 않고 스쳐가는 이들에게 평화 있으라. 서로 곁눈질로 바라보고 바로 잊는 건망증의 사회에 영광있으라. 그렇게 우리는 잡지도 않았던 손을 놓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 순서, 라면이 끓기를 기다리며 큰 소리로 책을 읽는 버릇, 싱크대에서 세수하고 이 닦는 습관, 한번 입은 옷은 무조건 빨래함에 넣고, 아침에 일어나면 더듬더듬 핸드폰부터 찾아 시간을 확인하는 나는 그 모든 생활의 물결 속에서 너를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너의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이빨로 만들어진 먼지처럼, 너는 야금야금 나를 잠식해 들어왔다. 내가 네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가 슬쩍 묻은 그 지점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가장 먼 곳까지 번져나갔다. 꾸준히, 천천히, 부드럽게, 마치 처음부터 입안에 가득찬 혀 같았다는 듯이. 문득 돋아난 뾰루지에서 손가락 발가락이 생겨나는 과정처럼 지난하고 머나먼 진화의 과정이 너와 나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으나 우리는 천진한 아메바처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평화, 각자에게 갇힌 평화 속에서 천년만년 살지 싶었다.

 

그러다 네가 내 가슴속으로 쑤욱 들어오던 순간의 당혹. 갑자기 네가 단단한 존재감으로 내 일부를 자처하는 순간의 황홀. 되짚어보면 아주 천천히, 너무나 천천히 진행된 일이라, 그 순간을 발견한 놀라움이 더 놀라웠다. 너는 진부한 시 구절 속에서 걸어나와 곧장 내게로 오는 듯이 보였으나, 그것이 과연 네가 내게 온 것이었을까. 내가 네게로 간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네 이름을 불렀을 때 네가 꽃이 되어준 것이 아니라, 이미 꽃의 얼굴을 한 네게 내가 돌진해 그만 추돌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을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비로소 얼굴을 올려다보게 되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후로 오랫동안, 더이상 좋을 수는 없는 시절이 흘렀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가 내 전부가 되는 일도 생기는 것, 그 삶의 기적이 일상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네가 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옷을 입는 순서, 늘 가방 안에 챙기던 소지품의 종류가 바뀌고, 잠들기 전까지 통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는 대신 문자를 확인했다. 쓰는 단어의 숫자, 읽고싶다 고르던 책의 목록이 바뀌고, 자주 가는 카페는 커피맛이 좋은 순위에서 음악이 좋은 순위로 재편되었다. 만나는 친구의 숫자가 줄고 밤에 외출하는 숫자는 늘었다.

 

변신로봇처럼 내가 네게 장착되고 네가 내게 장착되었던 그 시절, 우리는 지구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류는 너의 친구였으니까, 너와 너의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띠게 되었다. ‘너’라는 필터의 화려함, ‘너’라는 필터의 따스함. 그랬다. 습관이 바뀐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각이 바뀐 것이 가장 컸다. 세상에는 너와 둘 밖에 남지 않는 듯 하였으나, 그 둘이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었다. 골방이 꽃밭이 되는 순간의 기적을 우리는 목격했다. 기적을 보기 위해 종교를 가질 필요는 없었다. 일상이 기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듯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짧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기가 흘러갔다. 그 사이에 있었던 그 수많은 무엇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때, 그 기적의 순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할당된 단어들을 모조리 써 버렸으니까. 할말이 남아있는 시기. 아직 바닥에 서로에게 던질 단어가 남아있는 때는 서로에게 ‘아무것’인 때이리라. 아무것도 아니기 위해서는 말부터 비워내야 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각별한 것이 되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지만, 각별한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과정은 잡아 쥐어뜯듯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프는 좌우대칭의 완만한 산등성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절벽을 향해 치달았다가 바닥을 향해 내리 꽂힌다. 서로의 몸에 화상처럼 각인이 남는다. 바뀐 습관은 쉽게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네게 반응하던 내 몸의 기관들은 기준이 사라지자 갈팡질팡 곡선을 그린다. 꽃밭에서 골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멀다. 아마도, 혼자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다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삶의 평화. 평화의 쓸쓸함에 목까지 잠긴다. 그 지극함에 다시 한번 마음이 잠긴다. 이제 나는 또 다시 얼룩이 지지 않은 말쑥한 셔츠를 입고, 스쳐 지나가면 금방 잊혀질 사람들과 몇마디의 휘발성 단어를 나눌 것이다. 이제는 그곳에 없는 손을 잡고 놓지 않았던 미련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네가 내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듯이, 나 또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기적의 댓가였다. 나비가 번데기에서 탈피하는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나는 급격하게 내 안으로 구겨져 들어갔으니, 이제 평화, 지극한 평화 속에서 한 시절을 보낼 것이었다. 기적은 아니더라도 축복쯤은 남겨달라 중얼거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비극이기만 할 것인가. 아무것도 아닌 이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 그저, 그 아름다움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젯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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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친구가 묻는다. “너는 케로로 닮았다는 소리 듣는 게 더 좋아, 뽀로로 닮았다는 소리 듣는 게 더 좋아?” 둘을 비교하자면 케로로가 성격이 더 마음에 들고, 요즘 뽀느님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뽀로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쪽도 뭐, 하며 아무 생각없이 헤아리다 문득 발끈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내 주변에는 나를 ‘중사님’이라 부르는 무리까지 있는걸. 그렇잖아도 동그란 얼굴에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동그란 안경 탓이다. 한동안 “뽀로로, 라식수술 하지마라”며 뽀로로 얼굴에서 안경만 지운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녔을 때 친구들은 내게 안경을 벗어보라며 성화였다. 정말 닮았나 보자며.

어쩌다보니, 안경 때문에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늘었다. 내가 보기엔 그닥 독특할 것도 없는 안경이다.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5천원 주고 사서 안경점에서 렌즈만 바꿨다. 대학시절 안경을 쓰기 시작한 이래 바꾼 안경만 열두 개다. 처음엔 이물감 때문에 무테의 작은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크고 색도 들어간 안경이 아니면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 얼굴 위에서 안경이 자라난 셈이다.

흰 테에 분홍색 알의 안경. 두꺼운 검은 테에 노란색 알이 든 안경, 날렵하게 빠진 모양새에 녹색이 든 안경 등등등. 한 시절 쓴 안경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써보면 왠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얼굴이 안경에 맞춰지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예전부터 날 알아왔던 사람들은 내 안경의 진화과정을 눈치채지 못한다. 신묘한 물건이다, 이 안경이란 놈은.

사실, 안경은 패션아이템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실용성만 따지기에는 지나치게 눈에 띄는 묘한 물건이다. 아침마다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 헤메야 하고, 추운데 있다가 따뜻한 데 들어갈 때 일시적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되는 걸 감수해야 하며, 운동할 때도 귀찮고 뜨거운 국물 먹을 때도 귀찮다. 바지런히 닦아줘야 하고 어쩌다 어디 부딪치기라도 하면 충격이 크다.

새로 안경을 바꿀 때가 되어도, 마음에 드는 안경 만나기가 진짜 힘들다. 친구와 함께 들어갔던 안경점에서 녹색 하이그로시무늬 테에 금색 장식이 된 안경을 찾아낸 적이 있다. 무척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 뽀얗게 먼지를 쓰고 있는 독특한 안경이었다. 사야겠다, 싶어 챙겨놨다가 친구에게 빼앗겼다. 그날은 선선히 양보했는데, 그 뒤로 같이 다닐 때마다 다들 그 안경을 칭찬하니 몹시 마음이 쓰렸다. 안경과의 인연도 사람과의 인연만큼이나 운명적이다. 매일 코 위에 얹고 다녀야 함에랴! 적어도 사람은 안 만날 때도 있지 않은가.

하루, 안경을 벗고 다녀본 적이 있다. 근 십오년만이었다. 일회용 렌즈를 끼고, 그 김에 길다란 가짜 속눈썹까지 달아보았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친한 사람들이 나를 어색하게 대하고 있다는 게 온 몸으로 느껴졌다. 안경을 벗은 나는 더 이상 ‘중사님’이 아니었으니, 그들의 낯설고 생경한 태도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때는 내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내 몸의 일부도 아닌 안경이라는 사실이 좀 섭섭하기도 하다. 안경 뒤의 빛나는 내 눈을 봐줘, 하면 기껏해야 돌아오는 반응이란 게 이런 거다.: 네 안경은 네 눈이나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팬더곰 눈 주변의 까만 얼룩도 눈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한겨레21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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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무지무지무지무지하게 춥다는 날. 아래위 히트텍 갖춰입고 그 위에 폼 안나는 티셔츠와 청바지 겹쳐입고 털조끼에 패딩파카에 두툼한 목도리까지 돌돌 두르고 나섰다. 다행히 전시장인 갤러리 담은 우리집에서 멀지 않다. 창밖에서 들여다보니 안이 어찌나 열기로 뜨거운지 창문에 성에가 잔뜩 끼었네.


창밖에서 보고 가라고 진열해놓은 작품이 성에때문에 안 보이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랴, 이 추위도 곧 풀리겠지. 전시 기간은 2월 27일 월요일까지. 사이에 한번, 작품을 싹 바꾼다고 한다. 전반기 전시의 핵심은 바로....


스몰피플들. 천개다 천개. 이전부터 보아왔던 작품이지만, 숫자의 규모가 주는 감동이 상당하다. 스몰피플들은 제각기 다 다른 얼굴과 체형을 한 채로 그곳에서 서늘한 바람을 쐬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노석미씨의 그림작품들이 걸려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는 손색이 없다. 중반 이후에는 페인팅 작품들이 중심이 되어 전시된다고. 그때 다시 와야지.


벽면에 있는 천개의 스몰 피플에서 눈을 돌리면 또 박스마다 빼곡하게 들어선 스몰피플들.


그리고 쇼윈도우 밖을 내다보며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스몰피플들. 뒤에는 일련번호를 붙이고 있다. 다른 스몰피플들은 낱개로 구입할 수 있지만, 쇼윈도우에 배치된 이 작품은 전체를 한 개의 작품 개념으로 구입 가능하다고.


나오면서 다시 성에로 가득한 쇼윈도우를 아쉬워하며 들여다본다. 날씨가 풀리면 봄날처럼 사뿐사뿐 걸어가는 사람들과 눈 맞추렴.


Posted by 휘발성고양이


올해 초 엄청 춥던 날, "첫사랑"을 주제로 대담하기 위해 갔던 가로수길의 카페 생각난다. 이택광 선생님과 추워서 웅크린채로 두서없이 떠들었던 대화가 정리되어 대담기사로 나왔네. 첫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라며 계속 고사하다가 마지못해 나갔던 자리. 그래도 대화는 흥미로웠다.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특히 더. 

 

교보생명사보 <다솜이친구>, 2012년 2월호. 


 
Posted by 휘발성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