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다

근근한, 일기 2008/05/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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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붙어서 자는 모습을 보기 쉬운 건 아니지만, 확실히 사이가 좋아졌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일까. 게다가 서로 체형과 얼굴도 닮아간다. 싱크대에서 녀석들 밥을 만들고 있을 때 말없이 올려다보는 두 동그란 얼굴을 보면, 정말 너무나 형제같다. 두개의 동그란 얼굴. 네 개의 동그란 눈. 두개의 동그란 몸. 동그란 것들의 온화함.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밤에 교대로 침대에 오르락 내리락, 내 얕은 잠을 방해하더니 새벽에 보니 침대 옆에 널부러진 가방들을 각각 하나씩 깔고 동그랗게 말려서 자고 있다. 그네들은 나의 섬. 둥둥 떠있는 나를 붙잡아준다. 그네들은 나의 문진. 날려가버리기 쉬운 나를 꼬옥 눌러준다. 내가 생활에 붙어있는 것은 씹다 뱉어 동그랗게 말아놓은 껌딱지같은 그들이 나와 생활 사이를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 연약한 접착성. 연약하기 때문에 이를 데 없이 강한 접착성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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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그립지 않겠냐만, 요즘 어디가 그립지 않겠냐만
알함브라에 대한 글을 읽고 알함브라 사진들을 보면서
그곳의 고양이들을, 햇볕을, 나무를, 물소리를 그리워한다.

다시 가기에 알맞은 적당한 기억력.
아니, 기억소진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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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지락꼼지락
내가 다녔던 길들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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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인숙_4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9.5×100cm_2008_이미지 속닥속닥


집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들여다본다. 폰카로 찍은 조악한 사진들은 삶의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적나라하다. 좁은 원룸의 싱크대에는 설거지해야 할 그릇들이 쌓여있고, 화장실 선반 위에는 갖가지 브랜드의 제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방석은 납작해진 채 의자에 떨어질 듯 붙어있고, 키보드 옆에는 각종 컵들이 놓여있다. "이사준비하느라 못 치워서.."라는 변명은 그나마 애교다. 최소한의 변명도 없이, 제 몫의 삶이 저질러놓은 흔적들은 가감없이 게시판에 올라간다.

그러한 삶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건 묘한 중독성이 있다.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은 슬리퍼, 죽은 화분들, 제 자리란 게 없이 굴러다니는 듯한 쿠션, 오래전부터 비뚤게 놓여있는 듯한 TV. 멍하니 클릭클릭클릭클릭, 사진들을 넘겨본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나라고 다를 것 없듯이, 그들이라고 다를 것 없구나.

통속적인 가요의 가사를 들으며 저건 내 얘기야, 가슴을 친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너무나 통속적이어서 흔연하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나만 다를 거라고 다르지도 않고, 남들도 다르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이렇듯 닮은 꼴인 삶의 비루함. 그 닮음이, 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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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닮음, ,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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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을 데리러 온 엄마와 아이들로 바글바글한 던킨도너츠에 혼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티벳 여행기를 읽다가, 사진 속의 여자아이를 끄적끄적 그려본다. 사진속의 여자는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인데 그림속의 여자는 세월의 연륜이 묻었다. 해맑은 미소를 도저히 따라 그려낼 수가 없다. 입꼬리는 올라갈듯말듯 주저앉는다. 천진난만한 미소. 보러 티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의 티벳은 환상이다. 내 머릿속에는 그들의 싸움이 들어있지 않다. 나는 부러 그들의 초연함만을 보려 한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티벳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실제의 티벳이건 환상의 티벳이건 나는 한발자국도 떠나지 못한다. 떠나지 못하고, 남루한 던킨도너츠에 앉아 찢어낸 수첩 낱장에 남루하게 사진이나 모사해 그리고 있으니. 이 계절의 서울이 잘 닦인 유리창 너머의 풍경처럼 생경하다. 정말, 티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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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희_오렌지스카이_orange sky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7)

날것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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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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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인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07



혼자있는 시간이 늘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정적으로도 그렇다. 거의 모든 만나자는 연락을 거절하고 웬만해서는 술자리도 가지 않는다. 엊그제 연락한 후배 영화감독은 거절당하자 "배우 스케쥴 잡는 것보다 만나기 더 어렵다"고 투덜거렸다. 미안하긴 해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야 할 때가 언제고 아닌 때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쨌든, 혼자 있어야 할 때다.

고양이를 간호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일이 많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만만찮은 이유지만, 내가 지금 혼자 있어야 될 때라는 기묘한 자각도 한 몫 하고 있다. 혼자 있는 게 즐거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더 고통스러울 때다. 하지만 지금을 견디지 못하면 안 된다. 지금을 견디지 못한다면 아마도 나는 이후의 시간들을 사람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살 거다. 이상한 예감이다. 경계가 가까웠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나 스스로를 가둔 섬은 천국이 아니다. 천국이라고 해서 더 견디기 쉬울 리는 없지, 그런 생각으로 혼자 벽을 보고 앉아있다. 사실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 유사천국과 모의천국들 사이에서 한 시절 잘 놀았으니, 지금은 어쨌든 혼자 견뎌보자.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이 어렴풋한 확신 속에서. 내 스스로의 손으로 씌운 엘리자베스 칼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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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진_낙장불입_embossed works on wood_45 x 45cm_2006


땀에 젖은 손으로 고스톱을 칠 때처럼, 손에서 패가 잘 떼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끈적한 체액이 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머리로 모든 상황이 파악된다고 해서 몸이 냉큼냉큼 따라가는 건 아니다. 몸이 냉큼 따라가기는 커녕, 뇌하수체에 무겁게 매달리기도 한다는 걸,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다.

짧은 낮잠 내내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꾸었다기보다는, 불편한 심기가 묵직하게 눌러댔다. 천천히 명징한 정신이 돌아오면서 내가 처한 상황이 내 심기만큼이나 복잡다단하고 불편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럴 땐 눈 뜨고 차근차근 헤아리는 것이 필요한데, 몸은 자꾸 눈을 감고 외면하라 한다. 편치않은 심기를 고스톱판의 담요처럼 깔아두고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패를 내던져야 하는 악몽같은 게임판으로 돌아가라 한다.

낙장불입, 낙장불입. 버릴 것은 버리고 헤아려둘 것은 헤아려두어야 한다. 차근차근 끝낼일은 끝내고 끝내야 하는 일은 끝낼 일정을 잡아두어야 한다. 원하지 않아도 모든 일들은 시작할 때가 되면 또 시작한다. 쌓아둔 더미에서 새 패를 가져오듯, 매일의 일상이 내게 착실하게 배달해주는 것들을 받아두려면, 버려야 할 게 많다. 손바닥을 허벅지에 슥슥 문대고, 다시한번 호기롭게 던진다. 던진 패는 잊어버리는 게 수다. 이미 머리로는 알고있는 일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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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

근근한, 일기 2008/02/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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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늘 심심해하던 스밀라는 요즘 바쁘다. 아픈 요도크가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하악소리 한번 없이, 슬몃슬몃 구경하며 주변을 맴돌던 두 마리는 이제 얼추 서로를 인정하기 시작한 듯 하다. 그렇듯 서로 구경하는 독특한 관계. 덕분에, 스밀라는 요즘 내게 장난감 던져달라 놀아달라 조르지 않는다. 요도크에게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꽤 피곤한 모양이다.

요도크에게 아기 기저귀를 채워 돌아다니게 뒀더니, 사진속에 스밀라가 앉아있는 빈백 소파에 올라앉아 얼른 배변자세를 취한다. 배변자세를 취했다곤 해도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성과(?)는 없다. 그래도 줄기차게, 여기저기 천조각만 있으면 올라앉아 포즈를 취하는 요도크군. 병이 다 나아도 걱정이로구나, 멀쩡한 엉덩이에 계속 기저귀 차고 다니기 싫으면 알아서 스스로 관리해야 할텐데.

아픈 녀석 하나와 건강한 녀석 하나. 아픈 녀석과 건강한 녀석은 먹는 사료도 틀리고 화장실도 틀리다. 신경쓸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아프지도 않은 건강한 스밀라가 수저로 떠주지 않으면 밥 안 먹겠다고 앙탈이다. 아이고 이것들아. 내 피가 마른다. 스밀라가 요도크를 간호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제발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들 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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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현_#02630_종이에 혼합재료_100×150cm_2007



요도크가 아파서 병원으로 실려가고 성공률이 희박한 수술을 하는 동안 내내, "징조"에 대해서 생각했다. 요도크는 끊임없이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위험한 상태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일련의 징조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그 징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람과의 관계 또한, 다양한 징조들이 일어나고 눈앞을 스쳐지나가는데 무시하거나, 혹은 무시하려고 했다. 징조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어느새 연탄가스에 중독된 듯 그로기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부주의하거나 무신경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바라는 바와 다르기 때문에 놓쳐버리거나 눈 질끈 감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

잠수함속의 토끼처럼 예민할 일이다. 모든 징조들을 심상치않게 받아들일 일이다. 결국 일이 일어난 뒤에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는 둔감한 시간들은 내 발목을 잡고 내 뒷머리를 내리친다. 느닷없이, 라고 억울해할 수도 없는 일. 수다장이 징조들이 속살거리는 소리를 내 귓등으로 듣지 않았던가. 모든 일이 일어나고 난 뒤에야 내가 흘려들었던 그 수많은 징조들이 부끄러운 지도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놓쳐버린 모든 것들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시커먼 입을 벌린다. 내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징조를 무시해서. 징조를 애써 무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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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발성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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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화가 싫다. 문자메시지는 내게 구원의 손길이다. 전화기를 들고 "적정시간"이 지나가면, 나는 괴로워지고 포악해지고 패닉상태에 빠져버린다. 죽어버릴 것 같다. "전화만 끊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이를 갈고, 울고, 상대방에게 본의아닌 폭언을 퍼붓게 된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를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를 못 끊게 하는 것. 가장 상습적으로 그런 짓을 하는 엄마와 아직 모녀의 연을 끊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런 "전화폭력"이 없었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좋은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전화가 문제가 아니라 전화받는 자세가 문제일수도 있겠다. 핸즈프리로 바꾸거나 누워서 수화기를 머리와 침대 사이에 둔 채 팔을 자유롭게 놔두면 그나마 좀 나아지니까. 통화가 오래 되면 전화기를 든 팔이 부자연스럽게 꺾인 채로 굳어버리고, 그 채로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한다. 전화를 싫어하는 것은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일직선상에 있는 감정인가보다. 손이 묶여있고, 통화내용에 신경써야 하니 머리가 묶여있다.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패닉상태가 되는 건 당연하지 않나.

묶이는 것, 힘에 의해서든 환경에 의해서든 제압당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일이다. 전화는 그중 가장 부드러운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강제로 묶는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그것이 폭력인줄 모르고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그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이미 그 말을 해줘야 할 때쯤 되면 꺽꺽 넘어가고 횡설수설하게 되는데. 아예 전화기 컬러링에 경고문구를 삽입할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제발 내게 1분이 넘어가는 통화를 강요하지 말아다오. 전화를 간신히 끊을 때마다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캑캑거리고 울어버렸던 순간들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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